John 21
“거 드럽게 안 잡히네.”
거친 목소리를 내뱉으며, 남자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그물을 끌어올린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제법 노련하게 솜씨를 발휘했지만, 그물에는 치어 몇 마리만 팔닥거리고 있었다.
철썩- 철썩-
배에 파도 부서지는 소리가 탄식마저 집어삼켰다.
“오늘은 날이 아닌갑다”
찰그락.
그물의 추끼리 서로 부딪혀 듣기 싫은 소리를 내었다. 그 소리가 뱃사람들의 마음을 이상하게 후벼팠다.
“쯔업- 오랜만이라 그런가. 야, 내일은 손 좀 바꿔끼고 오자”
하하.
실없는 농담이 무거운 웃음소리와 함께 차가운 새벽 공기 속으로 힘없이 사라져갔다.
“해 뜬다. 들어가서 뭐 좀 먹고, 쉬었다가 다시 오자.”
다시 침묵.
“빌어먹을, 사람이 일곱이나 있는데 전부 벙어리 새끼인가, 가는 말은 있는데 오는 말이 없어.”
결국 남자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나머지 여섯중 한 둘은 움찔했지만, 곧 대부분이 심드렁하게 대응했다. 짜증과 피로에 압도당한 지금, 남자의 기분을 풀어줄 이유도 찾지 못했을 뿐더러, 진지하게 이 관계가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지 고민하고 있던 중이기 때문이다. 주변 상황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벌컥 화부터 내고 보는 사람이라는 것은 이제 모두 안다. 아마 남자조차도 자신이 다혈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가 제자들 중에서 암묵적 대장으로 인정되었던 이유는 나서서 매 맞는 것도 마땅히 감수하였고, 짜증만큼이나 웃음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너털 웃으며 남들보다 더한 고생도 묵묵히 감수한 그의 모습은 언제나 선생님을 기쁘게 했다. 선생님은 제자들 중 장을 선출하지 않으셨을뿐더러 사람이 사람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을 불쾌하게 여기셨지만, 제자들 사이에서 대장은 언제나 남자였다.
“이것 좀 갖다 버리자.”
남자가 그물에 어설프게 얽혀있는 치어를 대충 털어내자, 퐁당퐁당 어린 물고기들이 배 밖으로 던져졌다. 하지만 베드로는 이미 자신이 대장이라는 암묵적 약속이 의미 없어졌다는 것을 직감했다. 막내만 자신을 도울 뿐, 아무도 그의 곁에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그들의 반항어린 침묵에 지난 3년동안 잠시 여행했다치고, 고생한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물고기를 잡자는 것 외에는 해줄 말이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자 그 보잘 것 없는 위로조차 빵도 하나 안챙겨왔냐는 불평으로 변해있었다. 그의 몽니에 그나마 응해주는 사람은 결국 막내였다.
“아침은 물고기를 구워먹을 테니, 빵은 필요없다고 당신이 그랬어요.”
“그래, 빵 안갖고 왔지. 근데 집으로 가면 있을 거 아냐. 어이, 너네 집이 여기서 제일 가깝지 않아? 우리 같이 빵 좀 먹자.”
남자가 대머리에게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일곱명 전부? 우리 집은 나랑 어머니 두 식구 사는데… 평소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먹을 빵은 만들어 놓지 않는다고. 그냥 각자 흩어져서 식사를 해결하는게 어때?”
“야, 넌 내가 바보로 보이냐? 가루는 있을 거 아냐. 대충 구워서 요기만 하자고. 집에 걸어가다가 굶어죽느니, 그냥 가까이에서 빵 하나 구워먹는게 훨씬 지혜롭지!”
결국 남자가 벌컥 화를 냈다. 그러나 역시 큰 동요는 없었다. 그는 늘 대화가 잘 안되면 소리를 지르곤 했던 것이다.
대머리는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내일 먹을 빵조차 없다는, 빌린 뱃삯도 못 할 정도로 물고기도 못잡고 빵만 축낼 수는 없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제기랄, 누가 그냥 먹겠대? 나중에 다시 주면 될거 아냐. 사람 치사하게 만드네 진짜. 에이씨 구질구질하게.”
남자는 그냥 꺼지라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내심 대머리가 마음을 돌려주지는 않을까하는 일말의 기대로 마지막 말 한 마디를 목으로 꿀걱 삼켰고, 덕분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모두가 입술을 달싹거리고만 있던 그때, 뾰족코가 그 침묵을 깼다.
“난 그냥 우리 집에 가서 먹을게.”
절그럭 절그럭
추들이 서로 떨어지기 위해 구슬픈 소리를 내었다. 몇 명이 시린 손을 부여잡고 애써 그물을 개기 시작했던 것이다. 뾰족코가 뱃머리를 육지로 돌렸다. 7명을 태운 나무배는 힘겨운 신음소리를 내며,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자는 속상했다. 이윽고 그는 자신이 더 이상 이들의 대장이 아님을, 그리고 대장질을 원하지도 않음을 인정했다. 자기가 집에 돌아가는 길에 굶어죽으면 속 시원하겠느냐고 큰 목소리로 속삭였지만,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 이 따위 이기적이고 끔찍한 인간들과 3년을 같이 지냈다니. 이제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이다. 혹여나 아쉬운 소리를 하러 찾아오면 꺼지라고 얼굴에 침이나 뱉어주지 뭐. 남자의 마음은 분노로 부글부글거렸지만, 애끓는 한숨소리만 내뱉을 뿐이었다.
— ~~니까?
무거운 침묵만이 자리잡고 있던 호숫가였기에 들릴 수 있던 듯하다. 누군가 육지에서 제자들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 물고기, 잘~ 잡힙~~니까~~~?
뾰족코는 심술이 났다. 어느 게으른 어부가 동틀 무렵 나와 밤새 고생한 어부들에게 좋은 자리 알아보려는 수작이 분명했다. 노력은 적게하고 많이 얻으려는 저런 인간은 혼 좀 나봐야한다.
“예, 여기 아주 잘 잡힙니다. 빨리 오세요”
어느덧 육지와 가까워진 덕분에 크게 외치지 않아도 들릴만했다. 게으름뱅이가 허둥지둥 배를 몰고 헛걸음 하는 꼴을 상상하자, 괜히 만족스러웠다. 지난 밤사이에 자신이 한 일 중 가장 보람찬 시간이었다고 생각한 뾰족코의 나쁜 기쁨은, 하지만 곧바로 들려오는 남자의 외침에 산산조각 났다.
“아뇨! 안 잡힙니다! 한마리도 못잡았어요!”
보람은 무슨. 화가 난 뾰족코는 그걸 왜 가르쳐주냐고 짜증을 내려고 남자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베드로 좀 이상하지 않아?”
막 베드로에게 핀잔을 주려던 도마는 막내 요한의 이상하다라는 말이 굉장히 소극적인 표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목을 길게 내빼고 뚫어져라 뭍을 응시했다. 이는 으드득 꽉 깨문채 눈도 깜빡꺼리지 않아 눈물이 차오른 그의 모습이 기괴했다. 뿌연 안개 속을 투시라도 하려는지, 그의 두 눈알이 사정없이 굴러다니며, 그는, 좀, 정말, 미친듯이 중얼거렸다.
“맞지? 맞는거 같지? 보이지? 저기 맞지?”
‘상당히 불안정한 상태군.’
도마는 이제 베드로가 가여웠다. 물론 그가 자신에게 다시 그물을 던지라고 닦달하기 전까지만.
육지의 남자가 그물을 오른편에 던져보라고 하자, 베드로는 막무가내로 다른 사람들을 시켜서 그물을 던지게 했다. 빵 주기 싫다고 베드로와 다툰 나다나엘조차 허둥지둥 안드레와 야고보를 도왔다. 베드로가 눈에 핏발을 세운 채 그들을 잡아먹을 듯이 떠밀었던 것이다. 제자들은 영문도 모르고 그물을 던진 후에, 밤새 거듭한 헛수고가 아직 충분치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아이고 내 신세야 하는 한숨을 터뜨렸다. 그리고 틀림없이 비어있어야 할 그물을 움켜쥐었을 때, 무언가가 팽팽히 그물을 아래로 당기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물이 돌 사이에 끼인 줄 알았다. 하지만 느낌이 너무 달랐다. 3년동안 뱃일을 하지 않았다하더라도 모두 갈릴리에서 태어나 물고기를 잡으며 자라온 사람들이다. 그물만 잡아도 안다. 만약 그들의 느낌이 정확하다면 지금 그물 속은 물고기로 가득 차있을 것이다.
누가 말을 꺼내지도 않았지만, 배 위의 모든 사람이 3년전 어느 날을 떠올렸다. 그때도 이렇게 허탕을 치고 있었고, 배를 빌린 작자가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는 재미없는 농담을 해주었다. 분명 농담인데, 너무 진지해서 예의상 따라주었을 뿐이고, 딱 10분만에 그물이 찢어질 듯 물고기를 잡았다. 가슴이 뛰었었다. 물고기를 잡아서 기쁜 것이 전혀 아니었다. 그깟 물고기 그냥 바다에 다시 던져버려도 괜찮았다. 다윗에게나 있을 법한 일이 눈 앞에서 펼쳐졌는데, 지금 물고기 몇 마리가 대수인가.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이 그들의 가슴을 세차게 두드렸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선생님의 죽음으로 차갑게 식어버린 그 심장이 다시 꿈틀거렸다.
요한이 넋을 잃고 육지를 바라보는 대머리 나다나엘을 밀치고 노를 잡았다. 그물을 끌어올릴 생각따윈 하지 않았다. 아니, 그물이 찢어지건 말건 그건 아무 상관 없었다. 요한은 미친듯이 노를 저었다. 물고기가 가득한 그물 때문인지, 배는 느릿느릿 움직였다. 요한은 답답했다. 모두 멍하니 서있을 뿐 아무도 요한을 도와주지 않았다. 요한은 헐떡이며 베드로에게 도움을 청했다.
“베드로, 주님이신 것 같아요! 여기와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베드로가 요한에게 훌쩍 뛰어 왔다. 하지만 그는 노를 잡지 않았다. 그물도 잡지 않았다. 그는, 믿을 수 없게도, 겉옷으로 그의 더러운 속옷을 가렸다. 그리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물로 뛰어들었다.
육지로 헤엄치는 베드로는 여전히 눈을 감지 않았다. 넘실대는 파도가 앞을 가렸지만, 정작 그의 시야를 뿌옇게 만든 것은 파도가 아니었다. 뒤에서는 드디어 정신을 차린 제자들이 노를 젓고, 그물을 당기고, 온갖 소리를 지르며 육지로 배를 몰고 있었다. 그 중 몇 명은 자신처럼 물로 뛰어들어 발장구를 치며 배를 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래도 좋았다. 뒤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바로 저 앞에 죽음을 이기고 돌아온 생명의 주가 있다. 배껍질이 쿵쾅거렸다. 창자 속에 숨어있던 피가 뜨겁게 끓어, 목구멍 밖으로 솟구쳐 나올 것만 같았다. 있는 힘껏 헤엄치던 그의 귀에 박동소리가 들릴정도로 심장이 튀어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