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관계 속의 합리적 개인주의 문화를 통해.
우린 왜 행복을 찾을까. 왜 일을 열심히 하냐고, 왜 공부를 열심히 하냐고 물으면 대다수는 '행복해지기 위해'라고 답할 것이다. 그런데 정확히 행복이 뭔지 정의할 수 있는가? 삶을 살아가는데 행복이 정말 중요할까?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과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은 행복을 얻는 방법에 대해 일맥상통하는 의견을 갖고 있다. 이는 바로 사회적 관계에서 행복을 이끌어내려면 서로를 존중해주는 합리적 개인주의 문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행복의 기원>에 따르면 인간은 100% 동물이다. 위급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우리의 동물적 본능이지 이성이 아니다. 우린 동물인데 왜 행복을 느끼는 것일까? 저자는 다윈의 진화론을 주장의 근거로 삼는다. 동물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생각과 행위는 생존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생존을 위한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그 행위에 따른 '행복'이 있어야 자발적으로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행위는 계속 반복되어야 한다. 한 번 맛있는 것을 먹고 굶어 죽진 않는다. 계속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 결국 한 번 큰 쾌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작은 쾌감을 느끼는 것이 더 행복한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생존을 위한 행위는 무엇이었을까? 이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이다. 그래야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도 있고, 자손 번식을 위한 이성도 만날 확률이 높아진다. 결국 인간의 뇌는 사람들과 관계를 잘 맺기 위한 방향으로 발전되어 온 것이다. 그리고 뇌는 이런 사회적 관계를 자발적으로 유지하게끔 인간에게 '쾌락'을 보상한다. 결국 사람은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 있을 때 행복한 것이다.
내향적인 사람은 사회적 스트레스에 더 예민할 뿐, 사람들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내향적인 사람은 그럼 뭐냐고? 내향적인 사람은 사람들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스트레스에 더 예민한 사람들일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것을 불편해하는 것이고. 그들도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어색함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필요가 있다. 실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익숙한 사람과 갖는 식사자리보다 어색한, 새로운 사람과의 식사자리에서 더 큰 즐거움을 느낀다고 한다.
저자는 개인의 행복을 위한 도구인 집단이 개인의 행복을 저해하는 큰 요소가 되었을 때는 집단의 의미가 변질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집단에서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한다. '수직적 가치관'의 폐해인 것이다. 누군가가 본인이 생각했을 때 '일반적인' 경쟁의 경로에서 이탈하여 다른 길을 걷는다면 이를 거의 '미친 짓'을 하는 것이라 수군 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뒤에서 수군거리고 집단이 본인의 행복의 잣대가 되어버리는 현실이 과연 바람직한 현실인가? 자신의 본질이 아닌 외관으로만 인정받는 사회가 정말 바람직한 사회인가? 진정 당신은 이런 사회에서 행복할 수 있겠는가?
서로를 존중하는 합리적 개인주의자
문유석 판사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합리적 개인주의자'라고 한다. 다양한 이해관계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전략적으로 타협하는 것. 그리고 이 주체는 바로 개인이다. 개인이 주체로 먼저 서야 타인과의 경계를 명확히 인식할 수 있고, 이를 존중할 수도 있다. 집단 논리에 휘둘리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런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은 자신의 자유를 존중받기 위해서는 타인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사회 안에서 자신의 경계를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타인의 경계 또한 존중해준다. 이를 통해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우린 집단주의가 팽배한 대한민국 사회에서 스트레스를 받곤 한다. 사회적 관계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왜 정작 우리는 단단한 사회적 관계의 산물인 '집단주의' 안에서 고통을 받을까? 더 행복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행복하기 위해서 '중요한 요소'는 맞다. 하지만 항상 '긍정적' 요소이진 않다. 이런 긍정적, 부정적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이런 관계를 둘러싼 문화이다. 과도하게 타인을 의식하는 집단주의 문화는 문화의 행복감을 낮춘다. 생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일일이 파악하는 데에는 큰 기력의 소비가 있다.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는 그런 '함께 사는' 문화가 사회적 관계가 큰 행복을 만들어 낼 수 있게끔 하는데 필수적이다.
다양한 능력들이 각기 다른 기준을 통해 인정받는 사회
타인을 존중하려는 개인의 노력을 떠나, 사회 분위기 변화의 필요성 또한 필요하다. 사회에 존재하는 집단주의로 인한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림자를 강조하기 위해 빛을 애써 지울 필요도 없고, 빛을 강조하기 윟해서 그림자를 외면할 필요도 없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다양한 능력들이 각기 다른 기준을 통해 인정받는 사회. 활발하지 않고 사람들과 잘 못 어울리는 사람도 성공할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집단주의에 갇혀 상대의 가치를 내 잣대로 판단하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여 자신의 색깔을 잃어버리기 일쑤인 대한민국. 이젠 변화를 통해 진정한 행복을 찾을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