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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쾀 Mar 17. 2017

자기 자신을 되찾고 싶었던 그녀

무라카미 하루키 <잠>을 읽고



항상 긴 장편 소설만 접하다가 접하게 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잠>. 초 단편소설인데, 독일의 일러스트 작가가 그려준 삽화들은 소설 속 내용과 매우 흡사한 분위기를 풍겨서 몰입도를 높여주었다. 이 소설의 내용은 단순하다. 한 여성이 주인공이고 잠을 못 잔다. 불면증이 아니라, 그냥 잠이 안 오는 것이다. 남편도 있고, 자식도 있는 평범한 가정주부인 그녀는 자다가 가위에 눌리게 되고, 그 날 이후론 잠을 아예 잘 수 없게 된다. 


책에 들어있는 삽화


그녀도 처음엔 일반 사람과 같은 반응을 보인다.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닌지, 의사에게 찾아가 봐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잠을 자지 않는 시간을 즐기기 시작한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여자가 자꾸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녀는 잠을 자지 못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자꾸 '몰아내고 싶다',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끄집어내고 싶다'라고 중얼거리고 자기 자신을 바꾸려고 한다. 어렸을 때 읽다 만, <안나 카레니나>에 심취한다던지, 평상시에 먹지 않았던 초콜릿을 먹기 시작한다던지, 술을 마시고, 거울 앞에 서서 점점 자신의 모습이 젊어지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나, 자신을 찾고 싶은 '어머니'

이런 그녀의 모습은 평상시에 억눌려있던 그녀의 본모습이 드러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 <잠>은 평범한 가정의 '어머니'에 대해 쓴 책이라 생각이 든다. 보통 대부분의 어머니는 남편 뒷바라지하랴, 자식 챙기랴 자신의 시간이 부족하다. 자신을 위해 투자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게 어머니들의 현실이다. 만약 그들이 잠이 필요 없다면? 밤 12시부터 아침 6시까지 오롯이 자기 자신을 위해 투자할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떨까?라는 단순한 발상에서 시작된 게 <잠>이라고 생각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누군가의 남편이 아닌, 어머니가 아닌 자기 자신을 찾고 싶은 어머니들의 욕망을 소설을 통해 구체화했다. 정말 30분 만에 다 읽을 수 있던 단편 소설이었지만, 집에서 고생하시는 어머니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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