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필레머의 <내가 알고 있는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요즘같이 세대 갈등이 극심한 시기는 없을 것이다. 정치적 문제 때문인지는 몰라도, 세대 간의 갈등이 선을 넘었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젊은 세대들은 나이 든 세대를 '틀딱충'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꽉 막힌 보수 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터넷에도 자리 양보를 하지 않았다고 막말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동영상이 돌아다니는 현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노인들이 싫고 답답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노인들은 우리보다 오래 살았고, 삶의 고난 또한 훨씬 많이 겪어보았다는 것이다. 그런 다양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삶의 지혜가 우리보다 많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1000명의 노인들의 삶의 지혜를 담은 책
코넬대학교의 인류 유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쓰인 <내가 알고 있는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은 1000명의 70대 이상의 노인들에게 살아온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종합해서 기록한 일종의 지혜의 정수이다. 이 연구를 진행한 칼 필레머는 1000명의 노인들로부터 5가지 항목에 대한 지혜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각 항목에 대해 다양한 조언들이 수록되어 있지만, 난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고 마음에 와 닿았던 조언을 설명하고자 한다. 나머지 조언들은 사실 조금 뻔했기에.
사실 대부분의 조언들은 많이 들어본 조언들이었다. 상대방으로부터 이득을 볼 생각하지 말고, 서로 모든 걸 쏟아부어라, 좋을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으니까 싸우더라도 극복해 나가라 등등 어떻게 보면 '뻔한' 조언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조언은 '결혼은 가장 친한 친구와 하라'라는 조언이었다.
우린 사실 친구는 친구고, 연인은 연인이라는 구분을 하곤 한다. 하지만 70살 이상을 산 현자들은 연인 사이에 사랑도 중요하지만 우정 또한 무시할 수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사랑만으로 결혼을 한다면 언젠가 사랑이 식었을 때 남는 게 없어질 우려가 있다. 할 말이 없어지고, 어색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끈끈한 우정이 사랑을 뒷받침한다면, 사랑이 식더라도, 결혼 생활을 행복하게 이어나갈 수 있다. 시시콜콜한 대화와 사소한 장난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그야말로 성공적인 결혼 생활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현자들은 친한 친구와 결혼을 하라고 조언을 한다. 소개팅, 미팅처럼 상대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사람을 사귀지 말고.
내 주위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아직도 못 정한 사람들이 많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못 정한 사람도 있는 반면, 하고 싶은 게 없어서 못 정한 사람들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행복의 저울질을 한다. 현자들은 과감하게 돈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좇으라고 조언한다. 돈을 조금 못 벌더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인생이 더 가치 있어진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자연스럽게 일의 능률도 올라가기 때문에 돈도 따라온다고 한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고 싶은 일만 하게 될 순 없다. 현자들은 아무리 하고 싶지 않았던 일이라도 배울 점은 분명히 존재한다며 자신이 맡은 바 임무를 확실히 해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기회가 온다고. 그리고 일을 하면서 사람들과의 인간관계 또한 소홀히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사실 대부분 사람들은 부모님에게 잘못을 저지르고 맞아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또한 말썽쟁이 자녀들에겐 약간의 신체적 체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또한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현자들은 신체적 체벌은 절대로 선택하면 안 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신체적 체벌이 자녀들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없을뿐더러 정서적으로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체벌 대신 다른 제약을 통해 자녀들을 체벌해야 한다. 또한 자녀와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면 그 균열이 더 벌어지기까지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즉시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한다.
우린 늙어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늙으면 몸도 약해지고 사람들에게 무시당할까 봐. 그러나 현자들은 늙는다는 게 우리가 걱정했던 것만큼 썩 나쁘진 않다고 한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일상에서 한 걸음 물러나 여유를 즐긴다는 것은 늙어가는 것의 미학이다. 자신이 늙어가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 현실에서 즐거움을 찾고자 노력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나이를 올바르게 먹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정직하라고 현자들은 주장한다. 거짓말을 하고, 핑계를 댄다면 결국은 자기 손해라는 것이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기 마련이고, 그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마음을 졸이며 삶의 즐거움을 잃기 마련이다. 또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거부할 이유가 없다면 무조건 'YES'를 외치라고 한다. 나이 먹어서는 할 수 없는 활동들이 많다. 히말라야를 오르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것. 젊었을 때 하지, 언제 하겠는가. 최대한 다양한 활동을 해서 나중에 나이가 들었을 때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현자들은 당부한다.
행복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하는 것
모든 조언들을 관통하는 현자들의 공통적인 조언이 있었다. 이는 바로 행복은 선택하는 것이라는 조언이다. 자신이 일상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그런 의미로부터 감정을 느끼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선택이다. 순간순간에 좋은 가치를 부여하면 인생이 좋은 가치로 가득 차는 것이지만 순간순간마다 불행하다면 인생은 지옥과도 같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가장 필수적인 태도라고 현자들은 입을 모았다.
<내가 알고 있는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을 읽기 바로 전엔 사실 '꼰대' 같은 책이 아닐까 걱정을 했었다. 지금 현시대에 맞지 않은 조언들로 가득 찬 일종의 '설교'책이 아닐까 의심 반 믿음 반으로 읽기 시작했었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노인 세대에 대해 썩 좋지 않은 시선을 갖고 있던 나는 갖고 있던 편견을 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주변 노인분들과 친해지고 싶었다. 그리고 직접 묻고 싶어 졌다.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위기를 겪었고 그런 위기를 극복해왔는지 말이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다. 노인들은 아무리 정치적 이념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더라도, 우리가 살아온 인생의 갑절은 넘게 더 살아온 사람들이라고.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