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는 내가 훌륭한 마법사가 될 것이라 장담했다.
"커서 엄마, 아빠처럼 훌륭한 마법사가 돼야 한다."
"마법 연습 게을리하지 말고, 영어공부도 열심히 하고."
내 엄마, 아빠는 세상이 알아주는 유명한 마법사다. 호그와트에서 1, 2등을 다퉜다는 수재 마법사들이셨는데, 동양인으로선, 호그와트 역사상 최초였다고 한다. 지금은 두 분 다 마법부에서 범죄자를 잡으러 다니는 '오러'들이다. 두 분의 교육열은 다른 사람들과 남달랐다. 나를 3살 때부터 대치동의 유명한 마법 학원에 보내 선행학습을 시켰다. 동시에 한국어도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영국식 영어를 배우게끔 영어학원에도 보냈다. 마법 수업, 영어 수업을 다녀오면 바로 호그와트 지도를 외우게 했고, 마법약, 역사는 엄마가 직접 내게 가르쳤다.
그렇게 3살 때부터 난 부모님의 뒤를 잇는 최고의 마법사가 되기 위해 엄청난 선행학습을 거듭하고, 또 거듭했다. 일탈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내가 잠깐 딴생각을 하기만 하면, 부모님은 내 생각을 바로 읽고, 호되게 야단을 쳤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내가 호그와트에 입학하면 편하게 집을 왔다 갔다 하라고 영국으로 아예 이민을 가신다고 한다. 여기서 만든 친구들과 헤어질 생각을 할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난 마법에도 관심 없고, 그저 친구들이랑 놀고 싶을 뿐인데.
사실 내가 마법사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다. 보통 마법사 부모님을 둔 친구들을 보면, 손을 대지 않고 물건을 살짝 띄운다든지, 창문을 연다든지, '특별함'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난 그런 특별함과는 영 거리가 멀었다. 아무리 염동력을 쓰려고 노력을 해도 먹히질 않았다. 나 마법사가 아닌 거 아닐까. 불현듯 걱정이 됐다.
"엄마, 나 마법사가 아니면 어쩌죠..? 전 별로 특별한 거 같지도 않아요."
"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니? 사람마다 다 달라. 엄마랑 아빠가 이렇게 뛰어난 마법사인데, 네가 아닌 게 말이 안 되잖니."
엄마의 위안 같지 않은 위안을 듣고 사실 마음이 복잡했다. 난 마법사가 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은 것일까. 내가 별로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난 그저 친구들과 축구를 하고, 게임방에 다니는 평범한 삶을 살 수 있겠다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강한 확신에 난 안도감과 실망감을 느끼는 아이러니한 상태에 빠져버린 것이었다.
"네가 호그와트에 입학하면 아빠가 썼던 지팡이를 물려주마. 최고의 지팡이야."
엄마, 아빠의 기대를 받으며 그렇게 11살이 됐다. 호그와트에서 입학 편지가 날아오는 날. 그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부모님은 영국으로 이민 갈 준비에 열성이었고, 난 친구들과 헤어질 생각에 막막했다. 아무리 봐도 난 마법사가 아닌데, 그냥 평범하게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면 안 되나. 부모님도 이런 내 생각을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알고 있는데도 모른 척하는 건지 이민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우린 당연히 호그와트 입학 편지가 날아올 줄 알았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편지는 날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부엉이가 편지를 갖고 올 텐데. 부엉이가 날아오다가 포획당했나. 부모님은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며 걱정하기 시작했다.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호그와트 쪽에 직접 연락을 해보기로 했다.
호그와트는 서류상 문제가 전혀 없다는 답을 보냈다. 내년 신입생한텐 전부 편지를 보냈다며, 심지어 중국 산골짜기에 살고 있는 사람한테도 보냈다는 것이다. 신입생이라면 못 받았을 리가 없다며, 못 받았다면 아마 마법사가 아니라서 못 받았을 것이라는 충격적인 답을 줬다.
엄마와 아빠는 믿을 수가 없다며, 나를 끌고 상담소에 데려갔다. 거의 부술 듯이 상담소 문을 박차고 들어간 부모님은 상담사한테 따지듯이 소리쳤다. 우리 둘이 마법사이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싹 다 마법사인데, 어떻게 자식이 마법사가 아닐 수 있냐고. 거의 이성을 잃고 울부짖는 엄마한테 상담사는 참 딱하다는 눈빛으로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런 사람들이 있죠. 스큅이라고, 부모님이 두 분 다 마법사더라도 자식이 마법사가 아닌 경우가 있어요. 호그와트 경비로 오랫동안 일했던 필치 씨가 딱 그런 경우였죠."
우리는 넋이 나간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결국 난 마법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3살 때부터 그렇게 학원을 다니고 영어를 배웠는데, 쓸모없어져 버렸다. 나도 상당히 허탈했으나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친구들이랑 안 헤어져도 되니까. 계속 주말마다 축구를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희미하게 웃음을 짓고 있는 나를 보며 엄마가 소리쳤다.
"뭐가 그렇게 좋니? 창피한 줄 알아야지. 뿌리 깊은 마법사 집안에 스큅이라니. 어휴 창피해"
그런 엄마한테 아빠는 의외의 말을 꺼냈다.
"우리가 너무 극성이었던 것 같아. 마법사가 아니면 어때,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겠지. 너무 어렸을 때부터 애를 달달 볶았지 우리가. 마법사가 아니라도, 소중한 우리 아들이야."
엄마는 그런 담담한 아빠의 표정을 보고 한동안 째려보더니 방안으로 홱 들어가 버렸다. 아빠의 말 한마디에 조금은 허탈했던 내 마음이 가득 채워졌다. 아빠 지팡이 못 물려받아서 죄송해요. 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거 열심히 하면서 행복한 인생 보내는 거 꼭 보여드릴게요. 믿어주세요. 이런 내 생각을 읽으셨는지, 아빠는 나를 돌아보며 말없이 방긋 웃으며 안아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