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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쾀 Apr 14. 2017

우린 모두 특별하다

다만 그 길을 걸어갈 용기가 없을 뿐

"속보입니다. 최근 스위스에서 진행된 유전자 연구에 따르면 약 전 세계 인구 300만 명 당 1명 꼴로, 영화에서만 접했던 스파이더맨의 DNA를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의 톱니바퀴에서 잠깐 빠져나온 오늘. 오늘은 지긋지긋한 야근도 없고, 생각만 해도 속이 메슥거리는 회식자리도 없다. 오늘은 그냥 집에서 혼자 맥주나 마시며 밀렸던 드라마나 보는 날이다. 이런 날은 한 달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그런 진귀한 날인데. 어떤 맥주에 어떤 안주, 그리고 어떤 드라마를 봐야 이 황금 같은 날을 잘 보냈다고 소문이 날까. 


혹시 나도 스파이더맨이 아닐까

짧은 시간이지만 어떻게 의미 있게 보내야 할까 고민하며 TV를 킨 순간, 어젯밤에 자기 전에 잠깐 보다만 뉴스 채널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뭐? 스파이더맨? 그 영화에서 본, 손에서 거미줄 쏘는 그 스파이더맨 말하는 건가? 웃기지도 않네. 참 말도 안 되는 뉴스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내심 부러웠던 건 부정하지 않겠다. 만약 내가 스파이더맨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지긋지긋한 일상생활에서 벗어나서 멋있게 사람들을 구하러 다닐 텐데. 인스타그램 팔로워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겠지. 그런데 혹시 300만 명 당 1명이면 내가 스파이더맨일 수도 있는 거 아닐까. 영화에서 어떻게 스파이더맨이 거미줄을 쐈지? 스파이더맨 영화의 기억을 되살리며 손을 부자연스럽게 구부렸다가 폈다가 하는 순간, 손바닥에서 끈적한 줄 한가닥이 늘어졌다. 헉, 내가 스파이더맨이라니. 


300만 명 당 1명이라면, 이거 어마어마한 확률 아닌가. 설마 했는데 내가 그 행운의 주인공이라니. 내가 바로 영화에서 나오는 그 스파이더맨이 된 것이다. 비록 영화에서처럼 거미줄을 멋있게 쏘진 못했지만, 차차 연습을 해 나가면 되겠지. 이젠 지긋지긋한 회사 일을 때려치우고 대한민국의 유일한 슈퍼 히어로가 되는 길만 남은 것이다. 그렇게 결심을 하며, 소파에서 벌떡 일어난 순간, 눈에 볼록 튀어나온 내 배가 보였다. 뚱뚱한 슈퍼 히어로가 존재하긴 했었나. 


그냥 평범하게 살기로 결심했다

막상 슈퍼 히어로가 될라고 하니, 생각지도 못 했던 걱정거리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회사일은 어떡하지. 그냥 평범하게 살다가 결혼하고, 그저 남들과 똑같이 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괜히 맞지도 않는 슈퍼 히어로 짓 하다가 강도 총에 맞아서 일찍 죽으면 그것도 손해 아닌가. 난 싸움도 잘 못하고, 용기도 별로 없는데. 누군가를 도와주긴커녕, 버스에서 자리 양보 한 번 안 하는 나이기도 하다. 어떡하지. 부모님이랑 상의를 해 봐야 할까. 내가 스파이더맨 유전자를 갖고 있는 걸 아시면 정말 걱정하실 텐데. 그냥 남들 사는 대로 살라고 하실 텐데 말이지. 


그냥 숨기고 살기로 했다. 300만 명당 한 명이라면 적어도 우리나라엔 10명 이상은 존재한다는 뜻이니까. 내가 스파이더맨이 되지 않더라도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히어로가 되지 않을까. 그래. 난 그냥 살던 대로 살자. 갑자기 무슨 스파이더맨이냐. 


그렇게 난 언제 흥분했었냐는 듯 마음을 가라앉히고, 마시다만 맥주를 마저 마시기로 했다. 드라마도 딱 한 편만 보고 자야겠다. 내일 출근 준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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