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갖고 놀기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지금 어딜 만져요?"
끼익 하고 버스가 급하게 멈췄다. 버스에 탄 모든 사람들의 날카로운 눈이 나 하나로 쏠리니, 부끄러움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내 눈앞에는 팔짱을 끼고 선글라스를 끼고 씩씩 거리는 통통한 파마머리의 아줌마 한 명과, 5살 정도로 보이는 사납게 노려보고 있는 여자 아이가 서있었다. 한 손에는 스마트폰, 다른 한 손에는 에코백을 들고 있었는데, 도대체 무슨 손으로 이 아이를 만졌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저 아무 짓도 안 했는데요."
"거짓말 마세요. 방금 저희 애 만졌잖아요! 내려요. 경찰서 가서 이야기 하자고요."
버스 문이 열렸고, 난 죄인이 된 것처럼 모녀의 뒤를 따라 내렸다. 내가 내릴 때까지도 사람들의 시선과 웅성거림은 그대로였고, 희미하게 들린 카메라 셔터 소리는 내가 잘못 들은 것이길 바랐다. 그렇게 경찰서에 도착해서 모녀와 옥신각신 하고, 경찰관에게 내 무고함을 3시간에 걸쳐 수도 없이 설명한 끝에, 모녀는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며, 꼬리를 내리고 경찰서에서 도망치듯이 빠져나갔다.
"조심하세요. 요즘 저런 사기단이 극성이에요."
"네. 수고하세요."
오늘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날 때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하였는데. 평범하게 늘 타던 버스에 탔고, 늘 듣던 똑같은 음악을 듣고, 늘 하던 똑같은 게임을 했는데 말이다. 뉴스에서만 접했던 그런 사기를 내가 당하다니. 올해 액땜은 다 했다. 벌써 해가 져서 어두컴컴한 하늘 아래로 발을 질질 끌며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서 경찰서에서 꺼놨던 핸드폰을 뒤늦게 켰다. 킨 핸드폰을 소파 위에 던져놓고, 씻으려고 화장실로 들어가려는 순간, 핸드폰에서 쉴 새 없이 카톡 소리와 문자 도착 소리가 울렸다. 뭐야, 그 잠깐 연락 안 됐다고 다들 이 정도로 날 그리워하는 건가. 아니면 내가 연락이 없으니까 걱정되는 문자를 보낸 건가. 벗어놓은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소파 위에 털썩 주저앉아 카톡 소리로 가득 찬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변태 새끼'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쓰레기구나'
'다신 연락하지 마라'
뒤통수를 단단한 무언가로 강하게 후려 맞은 느낌이었다. 혹시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이 벌써 다 퍼진 건가. 근데 난 억울해. 아무 짓도 안 했다고. 서둘러서 핸드폰으로 뉴스 사이트에 접속해 나와 관련된 기사가 있는지 살펴봤다. 아무 기사도 없네. 페이스북으로 접속했다. 페이스북 지구본에 알림이 셀 수 없이 많이 와 있는 걸 본 순간, 직감했다. 그때 버스에서 내리면서 들었던 카메라 소리를 내가 잘 못 들은 게 아니었구나. 아니나 다를까, 버스 위에서 모녀와 실랑이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에 내가 태그 되어있었고, 사람들은 끔찍한 욕설과 협박으로 댓글을 도배해놓았다. 내 핸드폰엔 카톡이 쉴 새 없이 왔고, 평소에 연락을 잘 하지 않던 사람들조차 나를 조금이라도 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치욕스러워했다.
댓글에 천천히 자초지종을 써보았다. 아무 짓도 안 했어요. 오해가 있었는데, 경찰서에서 오해를 잘 풀고 끝난 일입니다.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들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계속되는 협박과 욕설. 마침내 부모님 귀에도 이 소식이 들어간 모양이었다. 믿음 반, 의심 반으로 보낸 부모님의 문자에 짤막하게 답장을 한 뒤, 계속되는 알림으로 뜨거워져 버린 핸드폰의 배터리를 분리한 후, 소파 위에 던졌다. 어떡하지. 신문사에 연락이라도 해 봐야 하나. 이런저런 고민으로 머리가 너무나 아파왔다. 그렇게 사람들이 잘 아는 신문사 몇 곳에 연락을 했다. 하지만 내 상황을 설명했더니, 며칠 지나면 잠잠해질 것이라며 외면했다. 돈도 안 되는 거 뭐하러 기사를 써주겠어.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묻히겠지. 하지만 내가 오해가 있었다고 해도, 내 이미지는 이미 바닥으로 추락한 상태인데, 도대체 어떻게 내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까. 나에게 사기를 친 모녀를 고소하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였다.
그래도 모든 지인들이 내게 등을 돌린 게 아니었다. 내 말을 들어보려고 한 사람들도 많았고, 애초부터 내가 마녀 사냥당한 것이라고 두둔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저 운이 없었다고 사람들은 날 위로했지만, 이 일을 통해 난 사람이 무서워졌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물어뜯기 바쁜 사람들. 난 그저 따분한 일상에서 몸부림치던 사람들의 뜯기 좋은 먹잇감에 불과했다. 심지어 내가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조차 그렇게 쉽사리 내게 등을 돌린 모습을 보고, 현실의 잔인함을 그대로 느꼈다. 난 모든 SNS를 탈퇴했다. 내가 누른 좋아요 하나, 남긴 댓글 하나가 누군가를 먹잇감 삼아 갖고 놀았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반성 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