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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쾀 Apr 09. 2017

인공지능, 생명으로 간주해야 할까

<채피>, 인공지능에 대한 물음을 던지다


휴 잭맨이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으로 보였던 영화 <채피>. <디스트릭 9>을 감독한 닐 블롬캠프의 작품 <채피>는 인공지능 로봇을 다룬 SF 영화이다. 사실 이 영화는 국외에서도, 국내에서도 눈에 띄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사실 망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인공지능 로봇에 대한 영화라는 단순한 소개로 접하게 된 이 영화는 내게 인공지능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개연성은 별로, 참신함은 최고 

이 영화의 배경은 2016년 요하네스버그이다. 매일같이 범죄가 일어나고, 경찰들은 이런 범죄를 막다가 사망하기도 하는 등,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디온이라는 엔지니어는 세계 최초의 로봇 경찰 '스카우트'를 설계해낸다. 로봇 경찰은 요하네스버그의 치안 유지에 엄청난 도움이 됐다. 디온은 스카우트 개발에 그치지 않고, 고도의 인공지능을 개발해낸다. 인공지능을 폐기 처분이 예정되어있던 스카우트 22호에 탑재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인공지능 로봇 '채피'를 만들어낸다. 



처음 인공지능을 탑재하고 작동된 채피는 그저 어린아이 같았다. 하지만 점차 학습을 해 나가고, 죽음, 사랑에 대해서도 배운다. 폐기 처분이 예정되어있던 로봇의 몸체로 탄생한 채피는 배터리가 눌어붙어 곧 전원이 꺼질 것을 알아내고, 어떻게든 새로운 몸체를 찾고자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마음을 컴퓨터로 옮기는 방법을 찾아내고, 영화 말미엔 총을 맞아 생명이 위태로운 디온의 마음을 다른 로봇에 이식하는 데 성공하기까지 한다. 물론 본인의 마음 또한 새로운 몸체로 이식한다. 


이 영화는 인공지능에 대해 내가 생각해보지 못했던 물음을 던졌다. 바로 인공지능을 살아있는 것으로 볼 것인지. 


인공지능 로봇은 살아있는 것일까

만약 인공지능이 개발된다면, 인간과 똑같이, 아니 그 이상으로 생각하고, 느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도, 전원이 꺼지면 죽는다는 것 또한 인식할 것이 분명하다. 만약 인간이 순수한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들을 어떻게 대우할 것인지도 큰 문제가 될 것이다. 현재 인간이 기계를 써먹듯이 인공지능을 부려먹는다면 그들은 분명히 반발하지 않을까. 영화 말미에 사람의 마음을 기계로 이식하는 데 성공한다. 물론 현재는 절대로 가능할 리 없지만. 심장도, 아무런 장기도 없는 신체에서 벗어나 기계로 마음이 이식된 상태를 과연 '살아있는 상태'로 볼 것인가.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을 어떻게 판단하는 것일까. 심장이 뛰는 것으로 판단을 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자아를 인식하는,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일까.

 


이 영화는 '살아있음'을 단순히 신체 조건에 국한시키지 않는다. 자아를 인식하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살아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채피>는 인공지능 개발자들에게 경고를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인공지능을 단순히 인간의 편의를 도와주는 기계의 개발로 볼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을 탄생시키는, 그런 막대한 책임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이다. 그리고 인공지능을 탄생시키기 전에, 인공지능에 대한 권리 또한 제대로 준비해놓아야 할 것이다. 


인공지능 개발,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다

깡패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깡패들의 생활 패턴을 학습하는 인공지능 로봇 채피를 보면서, 인공지능이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난 인공지능 개발자가 아니다. 그러나, <채피>를 보면서 인공지능 개발은 아무리 신중하게 진행이 되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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