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것보다 추운 게 더 걱정되는 여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손이 떨어질 듯이 시려서 길을 걸으며 전화도 못했던 거 같은데, 어느새 조금만 걸어도 땀이 날만큼, 그런 더위가 다가오고 있다. 오늘 오후엔 서울시 낮 최고 온도가 31도까지 올라간다는데, 이게 정말 4월 날씨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대로라면 이번 여름은 40도까지 올라가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벚꽃은 순식간에 폈다가, 순식간에 져버렸고, 이제 남은 건 뭐든지 태워 삼켜버릴 것 같은 그런 더위. 하지만, 내게 여름은 더운 계절이라기 보단 추운 계절이다.
여름은 더운 계절이 아닌, 추운 계절
다 태워버릴 것 같다, 조금만 걸어도 땀이 난다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상의 대부분의 시간을 에어컨이 빵빵한 실내에서 보내는 나에겐 여름은 몹시도 추운 계절이다. 나와 공감하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사무실에서 에어컨을 켜면 자동으로 나오는 콧물에다 재채기. 심하면 열까지 난다. 유독 추위는 내 먹이사슬 위에 있었다. 항상 내겐 강했던 추위. 어렸을 때 어머니가 공부 열심히 안 하면 더울 땐 더운 곳에서 일하고, 추울 땐 추운 곳에서 일하게 된다고 장난 삼아 이야기하셨었는데, 더울 때 추운 곳에서 일하는 게 더 나은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다. 추위를 싫어하는 내겐 오히려 최악인 거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해서, 내가 더위를 또 안 타는 건 아니다. 조금만 더워도 땀이 나고, 열이 나는데, 추위에도 약하니 이거 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할 노릇이다.
꾸준한 운동으로 건강한(?) 난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감기를 앓는 편인데, 보통 이 두 번의 감기를 모두 여름에 걸리는 편이다. 항상 듣는 소리는 왜 남들 다 더워서 헉헉 거리는 마당에 혼자 벌벌 떨고 있냐고. 영하 15도까지 내려갈 땐 기침 한 번 안 하다가 31도까지 올라가는 날에 기침을 해대는 날 보면 참 답답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다. 사실 뜨거운 태양 때문에 감기에 걸리는 게 아니라, 에어컨 때문일 텐데도 괜히 여름 탓을 하곤 한다. 어쨌든 여름 때문에 에어컨을 튼 건 맞으니까.
가방 안엔 항상 얇은 카디건
그래서 가방 안엔 항상 얇은 카디건이 준비되어 있다. 나 춥다고 에어컨을 끌 수도 없는 노릇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추운 실내 온도에도 분명 더위를 느끼고 있겠지. 그냥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혼자서 견디는 길을 택한다. 여름에는 일하는 곳뿐만 아니라, 영화관, 식당을 가도 여름이라고는 믿기질 않을 만큼 차가운 공기로 가득 차 있다. 들어가기 전까진 땀이 줄줄 나서 찬 바람에 몸을 식히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다가도, 그런 곳에 꽤 오랜 시간 있다 보면 후텁지근하고 눅눅한 여름 바람이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아직 4월 30일밖에 되지 않았다. 본격적인 더위가 몰려오지도 않았고, 고작 지금은 여름 체험판 수준이다. 하지만 이 체험판은 내게 여름에 대한 걱정을 미리 할 수 있게, 아주 고마운(?) 역할을 해주고 있다. 올여름엔 어떤 카디건을 입고 버틸지. 벌써부터 옷장을 뒤적거리고 있는 내 모습이 눈 앞에 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