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의 찰스 스트릭랜드가 준 따끔한 충고
좀 멀어 보이지만, 내가 하고 싶은 꿈을 선택해야 할까, 아니면 현실을 직시하고 평범한 직장을 갖고 평범한 돈을 버는 길을 선택해야 할까. PD를 하겠다고 당당하게 선언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사실 가끔 내 결심이 흔들리는 건 사실이다. 몇 백대 1을 넘는 경쟁률을 과연 내가 뚫을 수 있을지, 설사 PD가 된다고 하더라도 살벌한 방송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과연 돈은 잘 벌 수 있을지. 언론고시 준비를 하기 전 습관처럼 이런 생각을 하던 나에게 <달과 6펜스>는 뜻밖에 선물이었다.
물질적 세계에서 벗어나, 미술적 이상으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달과 6펜스>는 서머싯 몸이라는 작가가 지은 세계적인 명작이다. 작 중 내레이터 '나' 가 예술가 찰스 스트릭랜드의 삶에 대해 회고하는 형식으로 쓰였다. 찰스 스트릭랜드는 금융업에 종사하고 있던 런던의 직장인이었지만, 46살에 미술을 하겠다고 편안한 삶을 팽개치고 파리로 떠난다. 충격적인 것은 부인과 자식이 둘이나 있는 상황에서 그들을 버리고 떠나버린 것이다. 주변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는 일념 아래 파리에 간다. 마땅히 돈을 벌 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가난과 병에 시달리지만, 그는 예술에 대한 열정 하나 만으로 버텨낸다. 훗날 그는 파리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타히티로 가서 예술 생활을 지속한다. 결국 그는 수많은 명작을 탄생시킨 뒤, 병으로 사망한다. <달과 6펜스>의 제목은 스트릭랜드의 인생의 시작과 끝을 나타내는 제목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금융업이라는 물질적 세계, '6펜스'의 세계에서 살고 있었지만, 이런 세계에서 벗어나 궁극의 예술, '달'의 세계를 지향했고, 끝내 그는 타히티라는 공간에서 그 '달'의 세계를 찾아낸다.
<달과 6펜스>의 찰스 스트릭랜드는 사실 우리가 잘 아는 화가 폴 고갱을 모티브 삼아 만든 책이다. 사실 스트릭랜드의 삶과 폴 고갱의 삶이 완전히 똑같진 않다. 스트릭랜드는 처자식을 버리고 파리로 훌쩍 떠나버렸지만, 반대로 고갱은 아내와 자식이 그를 떠났다. 스트릭랜드는 불현듯 46살에 그림을 그리겠다고 선언했지만 고갱은 젊었을 때부터 조금씩 예술을 했었다. 다만 둘 다 금융업에 종사했던 경험이 있고, 그 안정적인 삶을 포기하고 예술을 선택했다는 가장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또한 말년을 타히티에서 보냈다는 것도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다.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았던 스트릭랜드
어떻게 46살에, 안정적인 직장까지 있는 상황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림을 그리겠다고 훌쩍 떠나버릴 수 있을까. 처자식을 버린 천하의 악질이라는 세상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한 끼는커녕, 일주일에 한 끼도 못 먹을 때가 다반사인 그런 생활에도 불구하고, 스트릭랜드는 자신의 예술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천재'로 인정받기까지 한다. 그가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자식을 버리는 게 나쁜 짓이라는 세상의 따가운 시선을 철저히 무시했고, 그림 그릴 재료 살 돈만 있다면, 일주일에 한 끼 겨우 먹는 가난도 굳이 벗어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고 타히티로 들어가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예술 생활을 영위한 그는 훗날 예술의 거장으로 남게 된다. 만약 그가 세상의 눈치를 보고, 기준에 맞춰서 살았다면 과연 훌륭한 화가가 될 수 있었을까. 그 대답은 단언컨대 '아니요'이다.
남의 눈치 보지 않아야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
<달과 6펜스>를 읽고 난 뒤, 내가 늘 하던 고민의 가장 큰 이유를 찾았다. 그건 바로 내가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너무 많이 본 다는 것. 혹시 나보다 내 친구들이 먼저 취업을 해버리면 어떡하지. 무시당하고 꿈이 좌절되는 게 아닐까. 괜히 PD 준비한다고 뒤에서 수군거리면 어떡하지. PD가 된다고 하더라도 남들보다 돈을 못 벌면 어떡하지. 끝없는 눈치보기. 그래서 난 다시 생각해봤다. 내가 왜 PD가 되고 싶었는지. 애초에 내가 왜 PD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는지 다시 돌아봤다. 난 돈을 많이 벌려고, 남들에게 자랑하려고 PD를 하겠다 한 것이 아니었다. 내 꿈은 그저 사람들을 웃게 만들고, 내가 만족할 만한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PD를 하고 싶다는 단순한 소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감은 떨어지게 됐고,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됐다. <달과 6펜스>는 그런 나에게 초심을 되찾으라는 강한 충격을 선물해줬다. 결국 인생은 내가 사는 것인데 왜 쓸데없이 남의 눈치를 보는 것이냐. 네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해라.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직 나 자신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그게 바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길이라고 찰스 스트릭랜드, 고갱은 내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