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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쾀 Jun 06. 2017

당신의 언어는 따뜻했나요?

<언어의 온도>, 한국말을 구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에세이

드디어 읽었다. 전직 기자 이기주 작가의 화제의 에세이 <언어의 온도>. 사실 난 베스트셀러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리고 베스트셀러를 구입하는 것 또한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다. 뭔가 줏대 없이 유행을 따르는 것 같고, 혹시라도 베스트셀러가 될만한 가치를 갖고 있지 않은 책의 판매 실적을 높여줄 수도 있기에 베스트셀러는 거르는 편이다. 특히 자기계발 서적, 소설은 80% 거르는 편이다. 지금까지 본 베스트셀러 공부법 서적, 자기계발 서적들은 뻔한 내용에다가 SNS 입소문만 타서 인기를 얻은 경우가 많았고 소설은 막장 드라마식의 자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지나칠 수 없었던 <언어의 온도>

하지만 <언어의 온도>는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정말 오랜 시간 동안 에세이 부분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 있었고, 이 책이 그렇게 인기가 많은 이유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 혼자서 공감 에세이랍시고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있는 입장에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사는 에세이란 어떤 에세이인지 몹시 궁금했다. 그리고 결국 사버렸다. 사고 난 후, 바로 근처 카페에 가서 3시간 동안 앉아서 다 읽어버렸다. 책을 읽으면서 이기주 작가의 표현력에 한 번 놀라고, 관찰력에 두 번 놀랐다. 이기주 작가는 우리가 평소에 무심코 뱉거나 쓰는 일상적인 단어에서 자주 무시당하거나 숨겨진 의미를 발굴해냈다. 그리고 그가 발굴한 단어의 의미들은 평소에 아무런 온도를 느끼지 못하며 그 단어를 썼던 내게 따뜻하거나, 차가운 단어로 다시 찾아왔다. 


모든 언어는 나름의 온도를 지니고 있다

<언어의 온도>는 이기주 작가가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낀 걸 쓴 공감 에세이집이다. 일상 안에서 '언어'라는 요소에 관심을 기울였고, 사랑, 사과, 여행 등 다양한 단어들의 의미를 단어의 어원에 그의 경험과 생각을 버무려 훌륭한 에세이로 탄생시켰다.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단어. 그런 단어들을 어떻게 이런 식으로 표현을 할 수 있을까 하며 책을 읽는 내내 감탄을 금치 못했던 것 같다. 혹시라도 내가 따뜻한 언어를 써야 하는 상황에서 차가운 언어를 썼던 것은 아니었을까, 누군가가 내게 했던 따뜻한 언어를 무시해버렸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자기 성찰도 덤으로. 


공감 에세이의 모범 

<언어의 온도>는 공감 에세이의 교과서라고 봐도 무방하다. 글 하나하나가 공감이 됐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공감 에세이를 써야 할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는 느낌이었다. 아직도 내 눈과 손에는 <언어의 온도>의 여운이 남아있다. 마음이 적적할 때, 세상을 혼자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 사랑에 상처받고 방황할 때, 꺼내 읽어볼 <언어의 온도>. 이 책에는 따뜻함이 그저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페이지마다 넘쳐흐르고 있다. 


<언어의 온도>에서 특히 공감된 구절들 


사랑의 본질이 그렇다. 사랑은 함부로 변명하지 않는다. 사랑은 순간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이리저리 돌려 말하거나 방패막이가 될 만한 부차적인 이유를 내세우지 않는다. 사랑은 핑계를 댈 시간에 둘 사이를 가로막는 문턱을 넘어가며 서로에게 향한다-이기주, <언어의 온도> pg.25
시인은 어머니 시신을 모신 관이 흙에 닿는 순간을 바라보며 '묻는다'는 동사를 쓰지 않고 '심는다'라고 표현한다. 어머니를 심는다고. "이제, 다시는 그 무엇으로도 피어나지 마세요. 지금, 어머니를 심는 중..."- 이기주, <언어의 온도> pg.124
지금도 나쁘지 않지만 앞으로 더 좋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순간 우리는 살아가는 동력을 얻는다. 어쩌면 계절도 감정도, 인연이란 것도 죄다 그러할 것이다-이기주, <언어의 온도> pg.137 
기다림은 그런 것이다. 몸은 가만히 있더라도 마음만큼은 미래를 향해 뜀박질하는 일. 그렇게 희망이라는 재료를 통해 시간의 공백을 하나하나 메워나가는 과정이 기다림이다. 그리고 때론 그 공백을 채워야만 오는 게 있다. 기다려야만 만날 수 있는 것이 있다-이기주, <언어의 온도> pg.163
여행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tour'는 '순회하다' '돌다'라는 뜻의 라틴어 'tomus'에서 유래했다. 흐르는 것은 흘러 흘러 제자리로 돌아오는 속성을 지닌다. 여행길에 오른 사람은 언젠가는 여행의 출발지로 되돌아온다. 돌아갈 곳이 없다면 그건 여행이 아니라 방황 인지도 모른다
-이기주, <언어의 온도> pg.251
느끼는 일과 깨닫는 일을 모두 내려놓은 채 최대한 느리게 생을 마감하는 것을 유일한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순간, 삶의 밝음이 사라지고 암흑 같은 절망의 그림자가 우리를 괴롭힌다. 그때 비로소 진짜 늙음이 시작된다-이기주, <언어의 온도> pg.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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