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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쾀 Aug 25. 2017

매년 10만 명의 일본인이 사라진다

<인간증발>, 세계 3위의 경제대국 일본의 어두운 이면을 파헤치다


세계 3위의 경제 규모를 가지고 있는 일본. 그 경제적으로 풍족한 일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인간증발>은 매년 10만 명의 일본인들이 스스로 사라지는 기이한 현상을 프랑스인 저널리스트 부부가 현장에서 직접 듣고 사람들을 만나서 얻은 기록이다. 과연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증발' 하게 만들었을까. 


명예를 중요시하는 일본 문화가 인간 증발을 야기한다

일본에서는 증발 현상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고 한다. 우리말로 쉽게 말하면 '야반도주'를 하는 것이다.  그들 대부분은 사업에 실패해서 얻은 빚을 갚을 능력이 없어서 보통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굳이 빚 때문이 아니라, 시험에 떨어지거나, 배우자가 바람을 피거나, 병든 부모를 부양할 능력이 없어서 증발해버리는 일본인들도 많다. 대한민국에서 20년을 넘게 자란 나로선 사실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도 있었다. 시험에 떨어졌다고, 직장을 잃었다고 가족들을 내팽개치고 전혀 다른 이름으로 다른 지역에서 온갖 잡일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실패'라는 것이 그들에겐 그렇게 못 견딜 만큼 고통스러운 것일까 하고. 일본인들은 빚을 지고 있다는 느낌에서 의무를 요구받는다. 그중 첫 번째 의무는 자신의 체면을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빚을 지고 있는 상황에, 이를 갚을 능력이 없다면 자신의 체면은 자연스럽게 상할 수밖에 없고, 채무자에겐 폐를 끼치게 된다. 결국 그런 '불명예'스러운 상황을 피하기 위해 그들은 증발을 하거나, 자살을 택하게 된다.  병적일 만큼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동을 혐오하고, 자신의 명예를 중요하시 하는 일본의 풍습은 인간증발 현상이 유지되는데 가장 주된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하다. 


일본 사회는 '압력솥'과 같다

이런 상황은 일본의 스트레스가 만연한 사회 안에서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인간증발>에선 일본 사회를 압력솥으로 비유한다. 일본인들은 약한 불 위에 올라간 압력솥과 같고, 그 압력을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수증기처럼 증발해버리는 것이다. 업무 스트레스가 엄청난 기업의 예로 일본의 대표적인 자동차 브랜드 도요타가 등장한다. 도요타는 가장 '적은' 인력으로 '최대'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게 기업 목표이다. 이런 다소 무리한 목표는 자연스럽게 직원들에게 엄청난 업무 스트레스를 주게 된다. 결국 이를 견디지 못하는 직원은 미쳐버리거나, 증발해버리는 길을 택하게 된다. 도요타는 그저 일부분에 불과하다. 일본 기업들의 사내 분위기는 대부분 저런 식이다. 사람보다는 회사가 우선인 분위기. 단체를 위해서는 개인의 희생이 당연시되는 곳. 


<인간증발>에서 등장하는 심리 상담사는 사람들이 증발을 해버리는 이유는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받지 못해서 그렇다고 한다. 직장을 잃고 방황할 때 곁에서 그런 사람들을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바른 길을 안내할 그런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떠나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증발하는 사람은 주변에게 자신의 상황을 알리지 않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떠나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변에서 그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 또한 쉽지 않아 보인다. 증발해버린 사람의 남겨진 가족들 역시, 결국 사라진 사람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그들의 인생을 묵묵히 살아가는 모습에서 인간증발 현상이 얼마나 일본 사회 깊숙이 자리 잡았는지를 실감하게 됐다. 


증발자들의 고백이 수록되어 있다 

<인간증발>을 통해 경제 규모 3위라는 번쩍번쩍한 타이틀 이면에 숨겨진 병든 일본 사회의 실상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었다. 더욱 좋았던 것은 이 책엔 실제로 증발했던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고백'이 수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고백을 통해서 그들이 증발하게 된 계기와, 이유를 알 수 있었고, 증발을 통해 새롭게 시작한 삶은 모두 순탄치 않았다는 사실 역시 알 수 있었다. 그런 힘든 삶을 살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과거의 자신과 가족을 버리고  고달픈 새 인생을 시작했던 그들의 모습은 안쓰럽게까지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버리고, 낯선 곳에서 온갖 더러운 일을 하며 살아가는데 일본 사회는 뭘 하고 있는 것일까 의아했다. 


<인간증발> 중간중간엔 저자가 찍은 사진들이 실려있다. 일본의 부락민(최하층 사람들)이 모습이 담겨있는 사진이나, 증발자 가족의 허탈한 눈빛을 담은 사진들은 어두운 일본 사회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고발인 동시에 경고 

실패를 용납하지 않고, 기업의 성과를 위해 개인들이 희생당하는 것. 어쩌면 대한민국에서도 만연한 문화일 수도 있다. <인간증발>에서의 일본 사회는 10년, 20년 뒤의 대한민국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실패를 해도 뒤에서 수군거리거나 손가락질을 해대는 그런 문화가 아니라, 실패한 사람이 다시 일어날 수 있게 손을 내밀어주는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생겨나야 하지 않을까. <인간증발>은 일본의 그런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을 고발하는 동시에 우리에겐 경고를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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