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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쾀 Aug 28. 2017

절대로 침묵하지 않는다

<공범자들>, 부당하게 희생당한 언론인들의 기억 


화가 난다. 그리고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된 나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럽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사람들이 '김장겸은 물러나라'라고 외치고 있을 때, 진심으로 공감하지 못했었다. 아 이런 일도 벌어지고 있구나, 하고 그저 내 삶을 사는데 충실했다. 평범하게 학원을 가고, 책을 읽으며, 글을 썼었다. 마음 어떤 곳도 무거운 느낌이 없었다. 왜냐하면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으니까. 그저 내겐 남일에 불과했다. 지금 빈 방에서 혼자 글을 쓰고 있지만 얼굴이 붉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면, 우리도 공범자들이 되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공범자들>을 보고 왔다. 심야라서 그런지 극장은 텅 비어있었다. 덕분에 눈치 안 보고 혼자 깊고 얕은 탄식을 내뱉으며 부들부들 떨면서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봤다. 미래에 언론인이 되고 싶었던, 심지어 교양 PD가 되고 싶었던 내가 이러한 사실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했다는 사실이 정말 창피하고, 화가 났다. 그냥 교양 PD가 멋지고 재밌을 거 같아서 교양 PD를 지망했었던 철없던 고등학교 때 나 자신을 영화 보는 내내 몇 번이나 자책했다. 올해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첫 번째는 군대를 건강히 전역한 것이고, 두 번째는 <공범자들>을 본 게 아닐까 싶다. 정부의 말도 안 되는 탄압 속에서 무너져 버린 대한민국 공영방송의 저널리즘은 언제쯤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방송계를 망치고 있는 사람들이 되려 큰소리로 '방송계 망치지 마세요'라고 하는 부분에서 지금까지 희생당한 언론인들의 억울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남들이 침묵할 때, 자신들의 청춘을 걸고 목소리를 낸 대가가 사유 없는 해고, 무기한 대기발령인 곳에서 언론인들이 살 수 있을까. 아직 김장겸을 비롯한 수많은 공범자들이 언론계에 남아 있다. 과거의 나처럼 그저 '남일'이다 생각하고 신경 쓰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 일종의 공범자가 되어가는 게 아닐까. 

출처: Daum 영화
대한민국 시사교양PD에겐 넘어야 할 높은 산이 있다. 그 산을 넘어보고 싶다

함께 시위에 참가하고 MBC 사옥에서 '김장겸 퇴진!'을 큰 소리로 외치자는 소리가 아니다. 적어도 대한민국 언론의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부당하게 해고당하거나 피해를 입은 언론인들을 기억해야 한다. 기억하지 않는 과거는 그저 잊힐 뿐이다. <공범자들>은 언론인이 되고 싶은 내게 대한민국 언론의 민낯을 제대로 알려줌과 동시에 언론인이 되었을 때 가져야 할 사명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볼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교양 PD가 설 자리는 제대로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정부를 비판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프로그램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정부 비판적인 내용이 다수 들어있다는 사실만으로 프로그램이 폐지되는 나라에서 어떻게 시사교양 PD가 '시사'에 대해 논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시사교양 PD에 대한 내 열정이 식어버린 것은 아니다. 다만, 아직 시사교양 PD가 된 것은 아니지만, 벌써부터 넘어야 할 큰 산이 보인다. 난 그 산 앞에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시사교양 PD가 되어서 그 산을 넘어보고 싶다. 만약 끝내 넘지 못한다면, 언론계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겠지. 

출처: Daum 영화

대한민국 언론계를 바꾸려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인생을 걸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그들 모두 언론에 자신의 인생을 바쳤던 사람들이다. 그만큼 언론을 사랑하기 때문에 외치고 있는 게 아닐까. 사랑하는 언론계가 무너져가는 걸 볼 수만 없기 때문에 그들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외친다. <공범자들>이 선물해준 것은 나도 언젠가 그들과 같은 신념 있는 언론인으로 성장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과 그들을 깊이 존경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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