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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쾀 Nov 28. 2017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서로를 변화시킨 두 친구의 이야기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는 중국에서 굉장한 인기를 얻은 소설 칠월과 안생(七月與安生)을 각색해서 제작한 중국 영화이다. 이 소설은 안니 바오베이라는 굉장한 필력의 작가 작품으로, 굉장히 유명해져서 중국에선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원작을 읽어보지 않고 영화를 본 나지만, 이 영화만 봐도, 소설이 왜 인기가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자석의 N극과 S극 같은 칠월과 안생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는 칠월과 안생의 우정을 그린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수많은 브로맨스 영화들 사이에서 더욱 돋보이는 여성 우정 영화. 이 영화는 인터넷 소설의 전개를 통한 플래시백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13살 때 칠월과 안생은 처음 만났다. 아마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끌렸을지도 모르겠다. 칠월은 부모님의 말을 잘 듣는 짜인 계획대로 살아가는 순종적인 아이였던 반면, 안생은 27살이 되면 죽겠다는, 하고 싶은 것을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하는 아이 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자유롭게 살던 안생은 정착을 꿈꾸게 되고, 자유롭게 살아본 적이 없는 칠월은 자유로운 삶을 꿈꾸게 된다. 결국 관객들은 이 두 캐릭터의 선택에 모두 공감을 할 수 있게 된다.

안생과 칠월
뻔한 삼각관계 영화가 아니었다

이 두 사람 사이가 늘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 사이엔 소가명이라는 남자가 나타난다. 소가명이라는 인물이 처음 영화에 등장하고, 칠월과 안생 그리고 소가명 사이에 미묘한 감정선이 생기면서 사실 난 이 영화가 단순히 '삼각관계로 인해 우정과 사랑 모두 잃어버리는 비극'을 다룬 것은 아닐까 걱정을 했다. 그런 뻔한 비극은 국내 막장 드라마에서 질리도록 보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영화가 전개되지 않길 간절히 바랐다. 다행히도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는 단순한 삼각관계의 영화가 아니었다. 남자가 사이에 있긴 하지만 주가 된 내용은 칠월과 사월의 감정 관계였다. 소가명은 큰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 

소가명, 안생, 칠월


서로를 변화시키는 과정을 감각적으로 그려낸 영화

사실 이 영화엔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칠월, 안생, 그리고 소가명. 사실 소가명은 이 영화에서 별 영향력이 없다. 진정한 주인공은 칠월과 안생 둘 뿐이다.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는 칠월과 안생이 서로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고, 변화시키는지를 감각적으로 그려냈다. 칠월은 어렸을 때부터 여성에 대한 고전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어머니의 충고를 지속적으로 들으면서 자랐다.

'여성은 자라면 결국 한 집에서 다른 집으로 이사 가게 되는 게 다이다'
'여자들은 나중에 엄청 많은 불편한 일들에 익숙해져야 한다'
'조금 굴곡진 삶을 보낸다고 꼭 불행해지는 것은 아니란다. 그저 조금 많이 힘들 뿐이지. 그런데 말이다, 여자들은 어떤 길을 택하더라도 모두 힘들게 되어있어'

이 충고를 곧이 곧대로 들으면서 살았던 칠월은 자신과 정 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 안생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다. 순종적이고, 마냥 기다리기만 했던 칠월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거 같은 남자와의 결혼을 과감하게 스스로 깬다. 일하던 은행일을 그만두고, 안생처럼 자유롭게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반대로 안생은 자유롭게 사는 삶을 살다가 결국 지쳐서 집에서 정착해서 살아가는 칠월의 삶을 동경하기 시작한다. 마음 가는 대로 살던 삶을 청산하고 안생은 자리를 잡고 정착을 하게 된다. 결국, 칠월과 안생의 삶이 바뀌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유로운 삶을 찾아 떠나는 칠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를 보면서 떠오른 책은 <데미안>이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그 알은 새의 세계이다. 알에서 빠져나오려면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의 곁으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라 한다.

<데미안>의 유명한 구절이다. <데미안>에서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알을 깨고 나올 수 있게 된다.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에서 칠월과 안생은 싱클레어이자 동시에 데미안인 것이다. 서로의 알을 깨고 나올 수 있게끔 서로를 이끌었다는 점에서 칠월과 안생은 진정한 '소울메이트'가 아니었을까. 칠월은 안생이었고, 안생은 칠월이었다.


알을 깨고 나올 수 있게끔 서로 이끌어주다

영화가 끝난 뒤 참 많은 여운이 남았다. 그만큼 마무리도 깔끔했다. 사실 중국 영화에 대한 안 좋은 선입견을 갖고 있었는데,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를 통해 그 선입견의 상당 부분이 깨졌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중국 영화를 볼 땐 큰 걱정 없이 봐도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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