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 앨런의 낭만적인 막장 삼각관계
**약한 스포가 있습니다
<미드 나잇 인 파리>와 <매직 인 더 문라이트>를 감독한 우디 앨런의 새로운 영화, <원더 휠>은 역시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사실 우디 앨런의 영화는 뭔지 모를 오묘한(?) 느낌을 주는 영화들이 많아서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특히, 우디 앨런이 입양한 7살 딸을 성추행했다는 의혹까지 있는 상황에서 그의 영화는 그 내용과 관계없이 비난을 받기도 한다. 우디 앨런의 개인사는 접어두고, <원더 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원더 휠>의 주 배경은 코니 아일랜드라는 미국 뉴욕시 브루클린 구 남부지역에 있는 위락 지구이다. 원더 휠은 코니 아일랜드에 있는 대관람차의 이름이다. 대관람차라니, 얼마나 신비롭고 로맨틱한가. 우디 앨런은 이번에도 <미드 나잇 인 파리>와 같은 영화를 만들어낸 것일까? 하지만 <원더 휠>은 단순한 로맨스 영화가 아니다.
<원더 휠>의 주 내용은 삼각관계이다. 벌써부터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거의 모든 막장 드라마의 소재는 삼각관계이다. 단순한 삼각관계이면 또 재미없다. 그중 누군가는 바람을 피우고 있어야 한다.
아들도 불장난, 엄마도 불장난
맞다. <원더 휠>의 핵심은 그 막장 삼각관계이다. 영화에는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지니(케이트 윈슬렛), 믹키(저스틴 팀버레이크), 그리고 캐롤라이나(주노 템플). 지니는 험프티라는 남자와 재혼 상태이고, 캐롤라이나는 험프티의 전부인의 딸이다. 지니 역시 전남편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하나 있다. 지니와 험프티는 코니 아일랜드에서 일을 하고 있고, 믹키는 작가를 꿈꾸고 있지만 코니 아일랜드 해변가에서 해상구조대 알바를 하고 있다. 원래는 지니와, 험프티, 그리고 지니의 아들 이렇게 세 명이서 코니 아일랜드에서 살고 있었다. 하지만 험프티의 딸이 갱스터 남편으로부터 도망을 쳐서 험프티의 집에 얹혀살게 되었다. 그렇게 3명이서 살던 집에 4명이 살게 되었다.
지니는 말도 안 듣고, 툭하면 불장난을 해대는 아들과 사랑도 없는 부부관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었다. 해변가를 떠돌며 콱 죽어버릴까 고민하며 걷던 지니를 발견한 믹키. 작가 지망생이라서 그런지, 사연 있는 여자한테 믹키는 자석처럼 끌렸다. 심지어 그 상대가 유부녀일지라도. 안 그래도 사랑할 사람을 찾고 있었던 지니에게 잘생기고 로맨틱한 믹키는 아주 적절한 상대였다. 그렇게 믹키와 지니는 불타는 사랑을 나눈다(불장난 ㄷㄷ..). 하루도 아니고, 여름 내내. 그러던 어느 날, 믹키는 우연히 캐롤라이나와 마주치게 되는데, 마법처럼(우디 앨런이 좋아하는) 캐롤라이나한테 반해버린다. 이미 믹키한테 간이랑 쓸개까지 다 내놓은 지니는 믹키를 캐롤라이나한테 뺏겼다는 생각에 질투를 넘어서서 캐롤라이나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찬다. 믹키한테 실연당했다 생각해서 우울했던 지니는 캐롤라이나를 추적하고 있던 갱단이 그녀를 찾아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하지만, 지니는 이 사실을 그냥 모른 채 한다. 결국 캐롤라이나는 갱단한테 잡혀서 사라져 버린다. 믹키는 지니가 사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른 채 했음을 알아내고, 그녀를 완전히 떠나버린다. 사랑하지도 않는 남편과, 시도 때도 없이 불장난을 해대는 아들만 남은채 그녀는 애꿎은 담배만 피울 뿐이다.
낭만적으로 포장된 막장 삼각관계
이 영화가 단순히 막장 삼각관계 영화였으면 우디 앨런은 분명 망작을 만들어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원더 휠>은 막장 삼각관계가 아주 예쁘게 포장된 영화이다. 일단 이 영화의 전개 방식은 다른 영화와 달리 굉장히 독특하다. 영화가 아니라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하다. 영화 전체적인 스토리는 믹키의 나레이션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나레이터가 극 중 인물로 연기까지 한다. 인물들의 독백, 과장된 표정 연기, 몸짓들이 자주 나타났다. <원더 휠>의 독특한 서사 전개 방식은 우디 앨런만의 신비로움을 더 돋보이게 해주었다.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여성상이 등장한다
<원더 휠>에 주목해야 할 점은, 당시 여성상과는 굉장히 상반된,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여주인공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원더 휠>은 19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 1950년대엔 미국의 여성 인권은 존중받지 못했다. 여자는 점잖아야 하고, 가정에 충실하거나, 공부를 해서 선생님과 같은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인식이 사회에 뿌리 박혀 있었다. 하지만 지니나 캐롤라이나 둘 다 이 여성상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들이다. 우선 지니는 남편 험프티와의 관계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술만 먹으면 사람을 때리는 망나니가 되는 험프티는 술을 마시지 말라는 지니의 강압적인 말은 잘 들었다. 영화 말미에 험프티는 자신의 딸, 캐롤라이나가 사라져서 술을 결국 먹는데, 지니한테 폭력을 휘두르지 않고, 오히려 큰 소리를 쳐서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한다. 지니의 전남편도 지니가 바람을 펴서 떠난 만큼, 지니는 가정에 순종적이기보단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하는 사람이었다. 아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사랑하는 믹키와 멀리 떠나버리고 싶어 하는 지니의 모습은 그 배경이 1950년대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지니는 늘 말한다. "난 식당에서 웨이터나 하고 있을 사람이 아니야"라고. 캐롤라이나 역시 도전적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던 평범한 남자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갱스터와 결혼을 했다. 그녀는 "더 많은 것을 원했다"라고 말한다.
분명 <원더 휠>은 삼류 막장 드라마의 요소가 많다. 유부녀의 바람, 삼각관계, 그리고 갱단. 하지만 그 막장 드라마를 우디 앨런은 하나의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원더 휠, 대관람차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신비로움과 로맨틱함이 이런 막장 드라마에서조차 느껴지게 만드는 것도, 우디 앨런의 타고난 재주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원더 휠>에서 드러나는 진취적인 여성상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