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쾀 Jan 16. 2018

<다운사이징>

유토피아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맷 데이먼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다운사이징>. 그 간략한 내용은 이렇다. 

지구의 환경오염이 극심해서 해결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 상황을 타개할 극적인 과학 기술인 '다운사이징'이 발명되었다. 이 기술은 인간의 크기를 엄청나게 줄여서 인간이 배출하는 쓰레기나 일으키는 환경오염을 줄이자는 취지에서 발명되었다. 인류 100%가 모두 소인이 되어서 지구를 구하는 것이 최종 목표이다. 실험적으로 다운사이징 시술을 받은 34명의 사람들이 4년간 모여 살면서 배출한 쓰레기는 고작 종량제 봉투 한 봉지 정도.  그리고 다운사이징을 받아서 소인이 된 사람들끼리 모여사는 '레저랜드'를 비롯한 거대한 마을들도 존재한다.  그 마을엔 온갖 실제 도시처럼 없는 게 없다. 물론 그 크기는 축구장 하나 크기 정도밖에 되진 않지만.

레저랜드의 모습. 실제 크기는 축구장 크기 정도이다.

'지구를 살리는' 다운사이징은 폴(멧 데이먼)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지구를 살리는 것도 좋지만 다운사이징에 대해 가장 매력적인 점은 경제적으로 풍족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애초에 살면서 필요한 생필품들의 크기가 훨씬 줄어들기 때문에 경제적인 부담이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적은 돈으로도 호화롭게 살 수 있다는 말에 평소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폴과 그의 부인은 다운사이징 시술을 받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시술을 받는 과정에서 부인은 결심을 번복하고, 결국 폴 혼자서 다운사이징을 받고 소인국, '레저랜드'에서 살아가게 된다. 

폴과 그의 아내

혼자서 작아져버렸는데 부인과 같이 살 수 있을 리가 없다. 작아진 몸은 다시는 커질 수도 없기에. 결국 폴과 부인은 이혼을 하게 되고, 이혼으로 인해 줄어버린 폴의 재산 덕분에 폴은 호화로운 인생을 살기는커녕 사회에 있을 때의 전문성도 살리지 못한 채, 상담원 일을 하며 작은 아파트에서 우울하게 지내게 된다. 

실제 크기의 장미를 들고 있는 폴

그 뒤의 스토리도 있지만 사실 <다운사이징>은 후반부로 갈수록 늘어지는 느낌이 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기로 한다. 이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이 영화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라고 스스로에게 계속 물었던 것 같다. 여러 가지 답이 나올 수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답은 적어도 이렇다.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 내에서는 다운사이징 기술이 개발되고 난 후, 다운사이징이 마치 인생을 아름답게 바꿔줄 아주 획기적인 기술이라는 광고가 넘쳐난다. 다운사이징 시술을 받은 폴의 친구 역시 폴에게 후회하지 않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라고 적극 추천하기까지 한다. 다운사이징을 하면 평생 일할 걱정 없이 놀고먹을 수 있다고. 그 말을 듣고, 온몸의 털까지 밀리며(다운사이징을 하려면 몸에 털을 다 밀어야 한다) 다운사이징을 한 폴은 오히려 작아지기 전보다 더 못한 삶을 살게 된다. 유토피아처럼 들렸던 레저랜드에서 그는 적성에 맞지도 않는 일을 하며 부인과 이혼까지 한 후, 외롭게 지내게 된다. 과연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도 그는 다운사이징이라는 선택을 했을까?

폴에게 다운사이징을 열심히 홍보하는 그의 친구
유토피아는 따로 없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신체가 작아졌다 하더라도, 레저랜드에선 돈을 내고 물건을 사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한다. 즉, 그 안에서도 자본주의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자본주의가 존재한다는 뜻은 부가 균등하게 분배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부자인 사람이 있으면 가난한 사람도 존재한다. 실제로 레저랜드에는 부자가 사는 휘황찬란한 동네가 있는 반면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이 모여 사는 할렘가 역시 존재한다. 모두가 부자가 될 순 없다. <다운사이징>은 모두가 행복해 보일 것만 같았던 '레저랜드'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내면서 이 세상엔 유토피아라는 곳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오히려 다운사이징 기술이 악용되는 사례도 나타나면서, 그 기술의 합리성과 가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큰 그림'만 그리다가 소중한 '작은 그림'을 놓치지 말자

우리는 모두 더 나은 삶, 더 나은 세계, 유토피아를 꿈꾼다. 이런 선택을 하면 내 삶이 좋아지겠지? 이전과는 다른 행복한 삶을 살겠지? 하고 말이다. 물론 선택을 통해 이전보다 나은 삶을 살 수도 있다. 삶의 완전히 뒤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 우리는 행복을 우리 주변에서 찾아야 한다. 삶이 아무리 힘들고 지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분명 놓치고 지나가는 것들이 있다. 행복해질 미래를 꿈꾸다가 놓쳐버린 순간순간 행복한 시간 말이다. <다운사이징>은 바로 우리 옆에 있는 행복을 돌아볼 것을 제안한다. 늘 '큰 그림'만 그리다가 옆에 있는 '작은 그림'을 놓치지 말라는 것이다. 몸이 굳이 작아지지 않아도 옆에 늘 공기처럼 존재하는 것들이 크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유토피아는 따로 없다. 매 순간순간 행복한 삶을 사는 것. 작은 행복에도 감사하는 것.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 유토피아가 아닐까. 


*사진 출처: 다음 영화

 

매거진의 이전글 <198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