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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쾀 Sep 26. 2018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색깔이 넘치는 한 권의 동화책을 보다.

색깔이 넘치는 영화 하나를 꼽으라 한다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되지 않을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BBC가 선정한 21세기 위대한 영화 100편 중 하나로 선정되었고, 얼마 전에 재개봉하기도 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그럴 자격이 있는 작품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정말 '최고다'라고 생각했던 부분은 총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영화를 예쁜 동화책처럼 만들어버린 촬영기법, 두 번째는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유럽의 현실적인 모습, 세 번째는 구스타브라는 캐릭터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매력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보면 동화책에 들어갔다가 나온듯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노스탤지어를 일으키는 핑크색과 보라색, 그리고 고정된 네모난 화면 안에 움직이는 인물들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카메라 기법은 이 영화를 한 편의 성인 동화책으로 만들어버렸다. 

아름다운 영화의 한 장면이다.
동화책 아님..이어지는 장면이다!

이 영화에는 193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유럽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스토리의 중심인 마담. D의 살인 사건은 세계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에 벌어지는데, 중간중간에 등장해서 신분 검사를 하는 군인들의 모습과 난데없이 벌어지는 호텔에서의 총격전은 그 참혹한 전쟁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다. 

호텔에서 아무 이유도 없이 누군가 쏘니까 같이 총을 쏴대는 군인들. 

사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주인공 구스타브는 유명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지배인이다. 그리고 제로는 가장 말단 신입 로비 보이였다. 구스타브는 제로를 데리고 다니면서 로비 보이의 기본을 가르쳐준다. 

제로와 구스타브의 만남

그러다 평소 구스타브가 친밀하게 지내던 마담. D의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누명을 쓰게 되자, 구스타브는 제로의 도움을 요청한다. 제로는 구스타브를 돕고, 구스타브는 끝내 누명을 벗게 된다. 스토리는 딱히 중요하지 않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사실 스토리보다도, 구스타브라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중심인 영화다.

제로와 그 뒤에 구스타브. 항상 가르침을 받던 제로가 구스타브를 구출하는게 포인트.

구스타브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순수한 세상 속에 사는 사람이었다. 여기서 잠깐, 순수하다는 건 아무것도 모르는 백치의 의미가 아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신념을 어떤 상황에도 고집하는 것을 말한다. 구스타브는 곧 자신이 죽을 위기에 처해있어도 시를 읊었다. 거지꼴로 감옥에 탈옥한 상황에서도 향수를 챙겼다. 전쟁이 일어나서 유럽이 급격히 바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바뀌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You see, there are still faint glimmers of civilization left in this barbaric slaughterhouse that was once known as humanity. Indeed that's what we provide in our own modest, humble, insignificant... oh, fuck it.
누명을 쓰고 들어간 교도소에서 옥수수 죽을 건네는 구스타브. 순수함이 넘친다.

Slaughterhouse는 전쟁이 벌어진 유럽이고,  humanity는 사실 구스타브다. 물론 그가 스스로를 지칭하면서 말한 건 아니지만, 사실 그 자체가 humanity였다. 전쟁이 벌어지면 사람들은 나라를 잃기도 하고, 무력 앞에서 사상을 강요당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구스타브는 이에 저항한다. 그래서 그가 죽게 되는 장면은 영화 내 유일한 흑백 장면이다. 비록 그는 죽었지만 끝까지 남은 그의 아름다운 세상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참혹한 전쟁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버텨낸 humanity, 즉 순수한 인간성을 상징한다.

유일한 흑백 장면. 구스타브는 군인이 쏜 총에 맞아 죽는다.


세계대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지만 우리도 참 팍팍한 흑백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꿈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삶을 산다는 건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리고 그 슬픈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돈을 잘 못 번다는 이유로, 되기 어렵다는 이유로 꿈은 무시당하고 비웃음거리가 된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그런 동화책에서나 나올법한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당신의 그 순수한 꿈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것이라고. 그 가치는 다른 누군가가 감히 내릴 수 없는 것이라고 말이다. 순수한 꿈을 지켜내야 흑백의 삶이 아닌, 색깔이 넘치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살 수 있다.

날씨가 험악해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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