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현실적인 디스토피아 작품이 던지는 경고.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 날이 온다면 어떨까. <그래비티>의 감독 알폰소 쿠아론의 작품 <칠드런 오브 맨>의 배경은 전 세계 여성의 임신이 불가능해진 인류 종말의 현장이다. 안타깝게도(?) 아이들이 생겨나지 않는 것만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는 폭동의 열기에 휩쓸리고 있었다. 전 세계의 이민자, 난민들이 폭동을 일으켜서 미국, 홍콩, 일본 등등 선진국들이 무너졌다. 강대국들이 차례차례 이민자, 난민들의 폭동으로 무너질 때, 영국은 유일하게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어떻게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냐고? 영국의 군대 덕분이다. 영국군은 난민들을 마치 좀비 바이러스에 걸린 병자들처럼 격리시키고, 위험 분자는 서슴지 않고 살해한다. 새롭게 아이들이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이민자들과 정부의 충돌도 격해지는 상황. 핵폭탄 없이 도착한 가장 현실적인 인류 종말의 현장이 <칠드런 오브 맨>에는 담겨있다.
이렇게 정부와 난민들의 충돌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기적이 일어난다. 새로운 갓난아기가 태어난 것이다. 18년 만에 처음으로 새로운 생명의 등장이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난민 흑인 여성의 아기. 난민들 측은 아기의 탄생을 공표한다면, 아기를 엄마와 분리시키고, 상류층 영국 시민의 자녀로 둔갑시켜버릴 것이라 주장한다. 아기는 난민들의 연합을 더 단단히 할 상징이고, 이를 이용해서 정부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칠드런 오브 맨>의 주인공 테오(클라이브 오웬)와 아기의 엄마 키(클레어 애쉬티)는 도망친다. 아기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걸 원치 않았다. 그들은 인류 프로젝트라는 '유토피아'를 찾아 나선다. 그곳은 영국의 법이 닿지 않는 곳이고, 인류의 미래를 준비하는 곳이다. 아기 케어하는데 아주 적합한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둘은 그 유토피아로 가기 위해 해안가로 가서 배를 타는 걸 목표로 하게 된다. 하지만 인류 프로젝트는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전설 같은 곳이다.
영화는 바다 위에서 인류 프로젝트로 가는 '미래호'와 만나며 마무리된다. 그 배가 정말 인류 프로젝트로 가는 배인지는 모른다. 어쩌면 그냥 새우잡이 배일 수도 있겠지.
<칠드런 오브 맨>은 굉장히 현실적인 디스토피아 작품이다. 전 세계적으로 난민 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서, <칠드런 오브 맨>의 설정은 우리에게 닥쳐올 미래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칠드런 오브 맨>이 하고자 하는 말은, 난민을 무조건 수용하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난민은 난민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서로를 신뢰하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칠드런 오브 맨>에서 영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은 난민들의 폭동으로 인해 정부가 붕괴됐다. 그 상황에서 영국군이 난민들을 다소 과격하게 제어하는 건 어찌 보면 그들의 생존 본능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외부의 공포가 주원인일 뿐 정작 영국 내에 존재하는 난민들이 원인은 아니었다. 그저 난민들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했던 일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난민을 신뢰한다고 해결되는가? 물음에 <칠드런 오브 맨>은 '노'라고 대답한다. 18년 만에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다는 것은 난민, 정부, 영국을 넘어 인류에 있어서 기적이다. 하지만 난민들은 이를 공표하면 정부가 아기를 뺏어가 버릴 것이라고 주장하며 공표하길 거부한다. 오히려 자신들의 단합을 위한 정치적 도구로 사용할 생각을 했을 뿐이다. 그렇게 정부와 난민 모두 각자의 이득만 생각하고 있을 때, 정작 새로운 생명은 인류 프로젝트라는 유토피아로 사라져 버린다. 난민 역시 정부를 무너뜨려야 할 적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대화를 해야 할 대상이라고 여길 필요가 있다.
<칠드런 오브 맨>은 전 세계를 상대로 경고를 하고 있다. 전 세계 정부들에게도, 난민들에게도. 단순히 난민을 거부하는 게 올바른 정책의 방향이 될 수 있을까. 난민을 수용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방지하는 정책을 내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난민들은 자신을 받아준 국가의 규칙을 수용하고 따를 의무가 있진 않은가. 자신의 종교를 무조건적으로 맹신하고, 타 국민들의 종교를 비하하는 일은 피해야 하진 않을까.
난민 문제는 정말 해결책을 찾기 힘든 딜레마다. 그렇지만 <칠드런 오브 맨>은 말한다.
난민이든 아니든, 우린 하나의 인류 공동체라는 것을.
*<칠드런 오브 맨>의 촬영기법은 미쳤다. 원테이크로 촬영한 장면들이 꽤 있는데, 실제로 내가 그 자리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다. 이 영화를 보게 된다면 촬영 기법에도 집중해서 봐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