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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쾀 May 02. 2019

기억은 진실이 아니다

<메멘토>가 디지털 세대에 던지는 의미심장한 경고

<메멘토>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작품이다. 15년이 넘은(2001년 개봉작) 오래된 영화이지만 지금 봐도 유치하지 않고 흥미진진하다. 영화 형식을 굉장히 특이하다. 시간 순서상 가장 마지막에 일어난 장면을 먼저 보여주고, 그 사건이 일어나게 된 계기를 거꾸로 추적해 올라간다. 그리고 더 특이한 건 주인공의 상태. 주인공의 기억은 단 10분을 못 넘긴다. 사고로 인해 단기 기억을 생성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주인공은 중요한 사실을 알아낼 때마다 잊지 않기 위해 몸에다 문신으로 기록을 남긴다. 기억을 잃었다는 것을 깨달으면 바로 주인공은 옷을 벗고 자신의 흔적을 찾는다. 여기서 내가 주목한 재밌는 포인트는 심지어 그 문신마저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잘못된 사실을 사실이라고 믿고 문신으로 새겨버리면 결국 그 잘못된 사실은 주인공에겐 '진짜' 사실이 되어버린다. 주인공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 아주 크니까. 주인공에겐 그 문신이 모든 행동의 나침반이다.

<메멘토>는 기억에 대해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 한번 진지한 고민을 해보게 만든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기억이란 얼마나 쉽게 왜곡되고, 지워질 수 있는가. 한 번 기억이 잘못되고, 그 틀린 기억에 대해 신념을 갖는 사람들은 무섭도록 자신의 틀린 기억을 상대방에게 강요하기도 한다. 남들이 모두 아니라고 하지만, 절대 듣지 않는다. 바락바락 우겨대다가, 기억이 틀렸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보여주면, 그제야 꼬리를 내린다.


기억에 의존하다간 인생을 식스센스급 반전영화로 만들 수 있다

심지어 오히려 기억을 더 잘하기 위해 마련한 여러 장치들이 진짜 사실을 담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게 함정. 실제로 시험공부를 하기 위해 만든 암기 노트에 잘못된 사실을 필기한 채로 달달 외워서 문제를 틀린 줄도 모르고 틀렸던 경험이 있다.


사실 우리는 삶의 많은 부분을 기억에 의존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행동 방식, 가치관 등등 많은 부분은 우리가 과거에 경험했던 특정 사건이나, 들었던 이야기에 큰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우린 실제로 우리가 듣고, 보고 경험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진실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순진함을 넘어 무서운 사고방식은 특히 지금과 같은 디지털 세대에 위험하다. 디지털 세대의 사람들은 눈만 뜨면 정보의 홍수 속에 빠져 살고 있지만 정작 팩트와 가짜를 구분하지 못한다. <메멘토>는 우리가 철석같이 믿고 있는 진실이 언제 우리 뒤통수를 때릴지 모른다는 일종의 경고를 하고 있다. 몇십 년을 진실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 무너지는 순간 우린 과연 삶을 이어갈 수 있을까? 우리는 머릿속에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문신을 새겨놓지만 그 문신은 사실 진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생을 식스센스급 반전 영화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 더더욱 조심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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