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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쾀 Mar 01. 2017

기억을 잃어도 여전히 당신이다

<스틸 앨리스> 알츠하이머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이다.

만약 내가 알츠하이머 병에 걸렸다면?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것들, 모든 기억이 사라져 가는 상황에 놓인다면 어떨까. 과연 내 기억을 전부 잃어가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나 자신을 '나'라고 할 수 있을까. 2015년에 개봉한 <스틸 앨리스>는 컬럼비아 언어학 교수 앨리스가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후 투병하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린 영화이다. 사실 이 영화는 리사 제노바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이 영화에 출연하는 줄리앤 무어는 이 영화로 제 87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앨리스는 컬럼비아 대학교에 저명한 언어학 교수다. 그녀는 의학계에서 뛰어난 남편과 아들 하나에 딸 둘을 슬하게 두고 있다. 행복하기만 했던 그녀의 인생은 어느 순간부터 삐그덕거리기 시작한다. 쉬운 단어가 기억이 잘 나지 않았고, 약속을 잘 잊어버렸다. 이상하다고 여긴 앨리스는 신경외과에 가서 유전성 알츠하이머라는 진단을 받는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일반적인 알츠하이머 병과 달리, 유전되는 형태로 앨리스의 자녀들도 유전됐을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전자가 일단 유전되면 병의 발병 확률은 100%다. 앨리스의 자녀들이 유전자 검사를 해 본 결과, 그녀의 딸 한 명은 알츠하이머 병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들에 대한 미안함과 자괴감에 빠진 앨리스는 기억을 더 잃게 되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면 자살을 하기로 결심하기도 한다. 


앨리스를 지켜준 것은 가족의 사랑

그러나 그렇게 괴로워하는 그녀를 곁에서 지킨 것은 그녀의 남편이었다. 항상 걱정해주고, 옆에서 챙겨주었다. 같이 운동을 하고, 옛날 얘기를 하고 그녀의 기억이 감퇴되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주었다. 또한 그녀와 자주 미래 문제로 다툼을 하던 딸 리디아 역시 그녀와 늘 영상통화를 하고 걱정해주는 등 사랑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가족들의 애정 속에서 그녀는 기억을 잃어가지만 그 잃은 자리를 따뜻한 사랑으로 채울 수 있게 된다. 

기억을 잃어가도 남편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사실 <스틸 앨리스>는 재미가 있고 흥미진진한 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영화라기 보단, 다큐멘터리에 더 가깝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한창 잘 나갈 때 알츠하이머 병에 걸려서 기억을 잃어가는 앨리스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내기엔 부족함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병이 완치되어서 모두가 행복해지는 그런 '말도 안 되는' 해피 앤딩이 아니라, 결국 기억을 잃지만 가족의 사랑이라는 더 소중한 것을 얻는 그런 앨리스의 모습은 영화의 결말을 따뜻하게 장식해준다. 


기억을 잃어도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스틸 앨리스>가 관객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하나다.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주위 사람들의 사랑이다.'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사람이 여전히 자기 자신으로 남을 수 있는 방법은,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이 그녀 혹은 그를 얼마나 사랑하고 관심을 가져주냐에 달려있다. 과연 어떤 것들이 나를 규정지을 수 있을까. 물론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기억하냐가 중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나와 주위 사람들 간의 관계이다. 이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은 김춘수 시인의 <꽃>이다.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히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누군가가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면 결국 나 자신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다. 우리의 존재는 다른 사람들을 통해 '사실화' 된다. 그리고 그들의 지속적인 관심은 나의 의미를 잃지 않게 해준다. 알츠하이머 환자들 역시 필요한 것은 지인들의 사랑과 관심이다. 그들이 계속 이름을 불러준다면 아무리 기억이 사라진다고 해도, 여전히 자기 자신으로 남아있을 수 있다. 앨리스는 기억을 잃지만 가족에겐 여전히 똑똑하고,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그런 아내이자, 어머니, 그리고 교수님으로 기억될 것이다. 


가족들의 사랑 속에서 앨리스는 견뎌낸다


그들에게 절실한 것은 가족의 사랑

뉴스를 보면 치매(치매에 걸린 사람들 75%가 알츠하이머에 걸렸다고 한다)에 걸린 부모를 버리거나, 동반 자살을 기도하는 등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주 흘러나온다. 2015년도 보건복지부의 노인학대 현황 통계 자료를 보면 학대의 대상 27%가 치매를 앓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만큼 국내의 치매 환자에 대한 대우가 몹시 열악하다는 뜻이다. 그들 자신도 기억을 잃고 있는 상황에서 힘든데, 주위에서도 사랑과 애정을 갖지 않는다면 말 그대로 사회에서 '도태'되는 것이다. 그들이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게, 여전히 그들 자신으로 남아있을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는 가족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스틸 앨리스> 마지막 부분에서 딸 리디야가 앨리스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원한 상실은 없으니까
지나간 것을 그리워하고
앞으로 를 꿈꾸며
고통스럽지만 나아가는 여정만이 있을 뿐

그리고 이런 고통스러운 여정을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은 '사랑'이었다. 당신 주위에도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약이던지, 상담이 아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지 너무나 두려워하고 있다. 그들을 두려움에서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은 아낌없는 사랑을 주는 것이다. 그들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랑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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