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PAPER스러운' 영화 (1)

<체리 향기(Taste of Cherry)>​​

by 타자 치는 snoopy

• 타자 치는 스누피가 선별한 네 편의 'PAPER스러운' 영화 (1)

있어도 당신의 친구, 떠나도 난 당신 친구
<체리 향기(Taste of Cherry)>

허수경 시인이 말했다. '방향을 잃는 것은 인간의 일이다.' 이란의 황량한 벌판에서 방향을 잃은 사람이 있다. 바디(호마윤 에르사디)는 차를 몰며 필사적으로 누군가를 찾는다. "제 부탁 하나 들어주시겠습니까?" 그의 질문엔 간절함이 배어 있다. 그는 벌판 구덩이에 누워 자살할 셈이고, 다음 날 생사를 확인한 후 주검에 흙을 덮어줄 누군가를 찾고 있다. 앳된 군인과 신학생도 부탁의 내용을 듣고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바디는 포기하지 않고 죽음의 뒤를 봐줄 사람을 찾는다. 이쯤 되면 그가 갈구하는 것이 죽음인지, 흔들리는 자신을 붙들어 줄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다가 박물관에서 일하는 노인 바게리를 만난다. 노인은 바디의 제안을 수락한 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무에 밧줄을 걸던 마지막 순간에 맡은 체리 향기가 젊은 날의 자신을 삶으로 잡아끌었다는 이야기. 애독자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자주 들은 말이 있다. 사람 냄새가 나서 PAPER가 좋았다고, 달마다 서점에 들러 PAPER를 가슴에 품고 오는 기쁨으로 그 시절을 버텼노라고, 그때 가슴에 닿았던 종이의 온기를 잊을 수 없노라고. '삶을 즐기려면 죽음이 쫓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리고 체리 향기를 맡아 보라.' 오마르 하이얌의 시 구절에서 시작된 이 이상한 여정의 끝이 어디에 닿을지는 오직 신만이 알 것이다. PAPER는 체리 향기가 나는 따뜻한 온기를 띠고 당신 곁에 남고 싶다. 누군가 PAPER를 펼칠 때마다 책갈피 사이에서 짙은 체리(삶의) 향기를 맡을 수 있기를.

#PAPER #25주년기념호 #타자치는스누피가선별한네편의PAPER스러운영화 #체리향기 #압바스키아로스타미 #오마르하이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