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PER 봄호 이준익 감독님 인터뷰
인터뷰 장소를 향해 가는 골목길엔 봄의 시간이 비늘처럼 빛나고 있었다. 성북동 둔덕, 소담한 한옥 '소행성' 안뜰에선 노란 수선화와 고양이 '순자'가 봄을 희롱하고 있었다. 때마침 내 엄마 이름이 '순자'였고, '죽을 때 타고 가려고 꼬불쳐 두었다'는 이준익 감독의 애정템 오토바이 색이 노란색이어서 반가웠다.
귀가 순해질(耳順) 연배의 감독님은 개구쟁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영화 <소원>의 소원이 친구 영석이와 이름이 같은 전, 영석입니다." 꾸벅 인사를 했다.
"오늘 인터뷰어인 전영석 기자는 PAPER에서 영화 칼럼을 연재하고 있고, 1년에 영화를 400편 이상 보는 영화광이거든요."
정유희 편집장이 이준익 감독에게 나를 소개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기 사이로 인터뷰이의 날카로운 눈매가 반짝 빛났다.
"인생의 반을 헛살았네. (일동 웃음) 너무 많이 보는 것은 안 보는 거랑 똑같아요. 1/5로 줄이세요. 남의 것을 너무 많이 보면 자기 자신을 다 잊어버려요. 그래서 전 영화 잘 안 봐요."
인터뷰를 시작하기도 전에 뒤통수를 세게 얻어 맞고 정신이 번쩍 났다.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인터뷰를 하겠답시고 당신 앞에 선 이들에게 무심한 듯, 작심한 듯, '말의 죽비'를 날린다. 자신은 '야매'로 영화감독이 된 사람이고, 인터뷰의 반은 '구라'이기 때문에 감독의 '말'에 현혹되면 진짜 중요한 것들을 놓친다는 너스레마다 '뼈'가 돋아 있었다. '손가락' 대신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는 전체와 개인, 낙관과 비관, 논리와 직관, 농담과 진심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면서(혹은 그것들을 아슬아슬하게 섞으면서), '직관과 통밥을 헷갈리면 안 된다'라고 웃으며 경고했다. '마음속 촛불'에 대한 질문에, 질문이 독특해서 평소에 한 번도 안 해본 말을 골라 독특한 답을 한 거라며 한 무더기 詩 같은 답변을 들려주기도 했다. 독자들이 인터뷰의 비밀을 알아야 한다며 "이 말은 꼭 써 줘."라고 신신당부하기도 했는데, 인터뷰는 인터뷰어가 원하는 말을 인터뷰이가 반은 하게 돼 있고, 세상 모든 인터뷰의 반은 인터뷰어가 원하는 답을 해줘야 하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인터뷰어들이 원하는 답을 안 해주면 인터뷰가 끝나지 않아서 괴롭다는 하소연은 시니컬하게 우리를 웃겼다. <자산어보> 개봉과 함께 이미 60여 개의 인터뷰 대장정을 마치고 맞이한 PAPER와의 마지막 인터뷰, 지치고 심드렁해 할 만 했지만 그는 '매번 만나는 사람의 소중함을 소홀히 하지 않고,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한다'라는 자신의 말을 매 순간 지켰다. 때론 유쾌했고 때론 진중했던 3시간 30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우리는 많이 웃었고, 인터뷰가 모두 끝났을 때 "고생 많았어요. 인터뷰 준비하느라고 시간 많이 썼을 것 같아."라고 말씀해 주셔서 고마웠다. 홀가분한 모습으로 인터뷰 장소를 떠나는 감독님에게 우리는 입을 모아 말했다.
"감독님! 진짜 뵙고 싶었어요. 앞으로도 영화 계속 찍어 주세요!"
-
(뱀발)
<자산어보>가 흑백 영화이니 인터뷰 드레스 코드랍시고 옷장을 몽땅 뒤져 흑백 의상으로 차려입었다. 흰 재킷에 검은 티셔츠와 바지, 그리고 검은색 양말과 운동화에 까만 페도라 모자까지. 이런 광대짓을 보고 놀라 '옷이 이게 뭐야, 촌스럽게...' 라며 놀려댔지만, 질문지 작성과 선정부터 인터뷰 및 인터뷰 원고 작성과 퇴고까지 늘 함께해 주고 지도 편달을 아끼지 않은 정유희 편집장님과 신영배 팀장님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아! 예가체프 커피 향과 맛난 다과로 인터뷰 정취를 한껏 돋아주신 <소행성>의 편성준 & 윤혜자 님과, 동영상 촬영 및 인터뷰 진행을 도와준 박주호 기자 & 정윤 씨에게도 감사를! 이준익 감독님과의 인터뷰 기사 전문은 <paper> 봄호에 있어요!
#PAPER #이준익감독 #이준익감독인터뷰 #자산어보 #옅고도짙은진심들 #소행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