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 청소용 워터샷이 고장 났다. 이음새가 터져 물이 줄줄 샜다. 변기용 수도관에 연결해 놓은 워터건 호스를 교체하려고 잠금 너트를 돌리다가 오래돼 삭은 너트 귀퉁이가 조각 나 부서졌다. 거기에서도 물이 샌다. 망했다.
이사 온 지 8년. 나이 든 노인 몸처럼 집 구석 여기저기에서 혈관이 막히거나 관절이 꺾이는 소리가 난다. 화장실 변기용 수도관 너트 한 개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8년 동안 묵묵히 해 온 일이 새삼스럽다. 온몸으로 엄청난 압력의 누수를 막고 있었다니! 철물점에 가서 수도관 꼭지 세트를 사 왔다. 5천 원. 너트 하나만 달랬더니 그렇겐 안 판단다. 철물점 사장님 말로는 교체가 아주 쉽다고 했는데... 그 '아주 쉬운 일'을 땀을 비 오듯 흘리며 3시간 동안 했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는다고(이 비유 맞나?) 낡은 수도관 바꿔 본 적이 없는 똥손은 얄짤없이 개고생. 수도계량기의 수도꼭지를 잠그고 호기롭게 교체를 하긴 했는데... 물이 줄줄 샌다. 새로 산 수도관은 양쪽에 너트 홈이 있는데, 테프론 테이프(나사 홈 실링 테이프)를 나사 홈에 돌려 감고 너트를 잠가야 물이 새지 않는다는 걸 모르고 그냥 생 너트를 채운 거다. 그러니 물이 샐밖에. 결국, 다시 테프론 테이프를 사고 물이 새지 않을 때까지 계량기 수도 잠금-너트 풀고-수도관 해체-테프론 테이프질-수도관 결합-너트 잠금-물 새나 확인-계량기 수도 잠금-수도관 해체-테프론 테이프질-수도관 결합... 과정을 무한 반복. 변기 구석에 쪼그려 앉아 공구질을 하는 통에 다리에 쥐가 나고 진이 다 빠질 즈음이 되자, 드디어 물이 새지 않는다. 만세!
미욱스럽게 몸을 굴려 깨달은 것은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 수차례 시행착오를 거쳐야 제대로 된 결과를 만날 수 있다는 것. 머리로 계획한 것과 실행할 때 맞닥뜨리는 상황은 대개 다르다는 것. 간단해 보이는 쉬운 일이라도 맹수가 먹이를 사냥하듯 죽음 힘을 다해야 한다는 것.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엄청난 임무를 수행하는 물건들이 있다. 테프론 테이프가 없었다면? 아귀가 맞는 나사 홈과 너트가 없었다면? 물이 새지 않게 수도관을 교체하는 일은 인류의 난제로 남았을 것이다. 우리 사회, 구석구석 구성원들도 마찬가지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엄청난(엄청나지 않으면 또 어떠랴?) 일을 숙명처럼 수행하는 '너트 한 개' 같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물건과 사람들 모습에서 견고한 소명의식을 엿본다. 세상은 그런 물건/사람 때문에 돌아간다. 세간의 이목이나 박수갈채 따위 신경 쓰지 않는 너트 한 개의 힘,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