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가디슈

by 타자 치는 snoopy


유사한 느낌의 <베를린>을 보고 실망했던 전력이 있어서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되자 러닝타임 121분이 슬며시 사라져버렸다. 손에 땀도 좀 났고 눈엔 소금기도 좀 맺혔다. 영화를 보며 하나씩 경험하는 일은 종종 있지만, 한 작품에서 둘 다를 경험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액션 영화가 아니라 영화 액션을 본 느낌이었다. 씬과 씬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면서 거대한 기계 덩어리 유기체로 진화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 영화의 세부적인 말초신경부터 전체적인 뼈대까지 감독이 치밀한 디렉팅으로 장악하고 요리했다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대사가 차진 데다가 머리와 가슴을 함께 때리는 펀치라인이 종종 보여서 스태프 이름을 찾아보니 이기철 각본가(<도둑들>, <암살> 각본)의 이름이 보인다. 역시 전문 각본가가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을 때 류승완 영화는 빛이 난다. 박훈정 각본이라는 화룡점정이 없었다면 <부당거래>가 '1%의 영감이 빠진 99% 노력형 범작'에 그쳤을 지도 몰랐던 것처럼.


영화 <모가디슈>는 TV 뉴스로 보기만 했던 소말리아 내전의 죽은 이미지에 상상력으로 디테일의 살을 붙여 피가 돌고 살아 벌떡이는 현실로 재창조했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사실, 류승완 감독의 전작들은 뭔가 조금씩 과한 경우가 많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픽션의 소명을 다한 느낌. 액션과 정치를 이렇게 천의무봉의 솜씨로 바느질 자국 없이 꿰매 이어 붙일 수 있는 감독이 누가 있을까? 류승완이란 이름 세 글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앞서 <쉬리>(1999)가 있었지만, 그 선배는 정치 드라마의 탈을 쓴 러브스토리였으니까. 조인성의 잔망미와 김윤석의 노련미가 극의 중심을 잡고, 어떻게 캐스팅했는지 정말 궁금해서 미치게 만드는 '앞니 빠진 소말리아 경찰' 역할 현지 배우 등 조연들의 신들린 연기가 더해져 멋진 앙상블을 만든다. 여전히 개인적으로 꼽는 류승완 감독의 최고작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2000)>(좌충우돌 대책 없는 무모함, 맨땅에 헤딩하는 패기, 수치로 계량할 수 없는 들끓는 에너지 때문에)이지만, 이제 <모가디슈>(2021)로 그의 영화 세계가 경계선을 막 넘어서 새로운 단계(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복선을 압축한 채 머리를 때리고 가슴까지 치고 들어온 최고의 대사는 '살다 보니 진실은 두 가지가 있을 때도 있습디다.'였다. 북한 대사관 직원들 대사를 영어 대사와 함께 한글 자막 처리한 감독의 정치적 조크(한국과 북한은 서로에게 외국)에 빵 터져버렸다.



#모가디슈 #류승완 #정치액션이란새로운장르의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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