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 마이 카

무라카미 하루키 X 하마구치 류스케

by 타자 치는 snoopy

열돔이 한반도를 덮쳤을 때 나는 펄펄 끓는 보리 차를 마시며(대체 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 <드라이브 마이 카>를 다시 꺼내 읽었다. 순전히,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신작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를 보기 위한 워밍업 때문이었다. 사는 동안 모든(이라는 말을 조심하는 편이지만, 이 경우엔 가져다 써도 무방할 듯) 인간은 '연기를 한'다. 연기의 수준과 질, 기술적 완성도는 사람마다 각양각색이겠지만, 아무튼 연기를 하며 사는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소설의 주인공 가후쿠는 삶이나 일(직업)에서 모두 프로 연기자다. 그는 '내가 아닌 다른 것이 되는 것'이 좋아 연기를 시작했고, '연기가 끝나면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오는' 게 좋아서 연기를 계속하고 있다. 그는 삶에서도 '자신'을 능숙하게 연기했는데, 아내의 갑작스러운(전혀 눈치채지 못한) 죽음과 함께 연기를 하는 것만으로 해결이 안 되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아예 사라진 건지 아니면 잠깐 어긋난 건지 모르겠지만, 아내의 죽음 이후 그는 돌아올 자리(좌표)를 잃었(놓쳤)다. 가후쿠는 자신이 가질(알) 수 없는 것-죽은 아내의 속마음-에 집착한다. 아내가 죽기 직전 마지막 내연남이었던 동료 연기자 다카스키 앞에서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는 홀아비 연기를 하며 자신의 의심을 확신으로 만들기 위해 애를 쓴다. 그는 무대 위에서 늘 그랬듯, 일단 나를 벗어났다가 다시 나로 돌아오기를 반복하지만, 돌아온 곳은 정확하게는 이전과 똑같은 장소가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가후쿠는 자신의 차 노란색 사브 900 컨버터블을 완벽히 제어하며 운전하듯 자기 자신을 제대로 운전하고 싶지만, 자기 마음은 차처럼 완벽하게 제어되지 않는다.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해서이기도 하지만, 이 소설은 영화를 운전하기(감상하기) 위한 예행연습 삼아 다시 읽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전작들, <자아와 타자 (SELF AND OTHERS, 2000)>(서른여섯에 요절한 일본의 사진작가 고초 시게오에 대한 다큐멘터리)와 <아사코 (Asako I & II, 2018)>를 보고 그의 영화에 매료되었는데, 그가 하루키의 단편 소설을 각색해서 새 영화를 찍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가 칸영화제에서 엄청난 호평을 받았다는 외신들이 궁금증에 불을 질렀다. 전작 <아사코>에서 뻔해 보이는 멜로 라인에(그것도 막장) 삶과 인간 감정의 양가적 모순을 예리하게 갈아 넣어 내 뒤통수를 세게 쳤기에 하마구치 감독이 다음 작품으로 무얼(어떤 영화를) 내놓을지 정말 궁금했거든. 신기한 게, 하루키의 <드라이브 마이 카>를 읽을 때마다 이기호 소설가의 단편 <밀수록 더욱 가까워지는> 생각이 나는 건 왜일까? '노란색 사브 900 컨버터블(드라이브 마이 카)'과 '하얀색 스리 도어 프라이드(밀수록 더욱 가까워지는)' 차종의 차이만큼이나, 스토리나 분위기도 사뭇 다른 두 작품인데. 곧 개봉한다는 영화는 하루키의 원작이나 내 머릿속의 <드라이브 마이 카>와 또 얼마나, 어떻게 다를지 몹시 궁금해하며 기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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