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서 등 유감

by 타자 치는 snoopy


코딱지만 한 현관 천장에 작은 센서 등이 있다. 업자들이 싼 자제를 써서 그런지 그 센서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더랬다. 스위치를 켜면 잠시 빛을 주다가 허리를 구부려 신발을 신는 사이에 곧 꺼지곤 했다. 허공에 손을 두서너대여섯일고여덟 차례 휘저어야 '옜다 먹어라' 하듯 불이 켜졌다. 덕분에 신발장에서 신발을 꺼낼 때마다 불쾌지수가 발정 난 수컷이 테스토르테론을 뿜어내듯 콸콸콸 솟구치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그마저도 등이 켜지지 않았다. 전구가 나간 건가 해서 새 전구를 갈아 끼워봤지만 먹통. 등 자체가 사망하신 것 같았다. 망할.


한동안 '알아서 척척 인공지능 퍼지'가 가전제품 광고 시장을 휩쓸었던 적이 있었다. 요즘 말로 번역하면 A. I. 아무튼 난 그 '퍼지'가 싫었다. '인공지능 퍼지' 기술 자체가 싫은 게 아니라(다 알아서 해준다는데 싫을 리가...) '설익은 퍼지 기술'의 불완전성이 싫었던 것. 어린아이 손이 자동문에 끼어 잘렸다던가 하는 사건 사고 뉴스를 볼 때마다, 영화 <토털 리콜>의 로봇 택시 기사가 고장 나서 상황에 안 맞는 말을 하고 또 하고 한 말 또 해서 주인공 아놀드를 열받게 하던 장면이나, 노동자들의 식사 시간을 절약하겠다며 <모던 타임즈>에 등장한 자동화 섭식(攝食)기가 고장 나 수프를 찰리 체플린의 옷에 쏟고 입닦개가 그의 따귀를 때리던 장면들이 생각났다. 완벽하게 운용되는 인공지능 자동화 시스템은 인간에게 문명 이기의 무한한 축복이 될 수 있지만, 그 시스템 어디 하나가 삐거덕 삑사리가 나면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의 슈퍼컴퓨터 할 Hal(이라 쓰고 'Hell 지옥'이라 읽는다)을 우리 생활 속에 소환하게 될 거라는 공포가 늘 나를 지배하곤 했다(유사한 느낌으로 나는 '자율주행차'의 안전성을 오래도록 믿지 못할 것이다. 완전 편하다며 모두가 자율주행차를 타고 다녀도 나는 내 손으로 직접 운전대를 잡고 운전을 할 거란 얘기 ㅎㅎ).


등은 꼭 이케아에 가서 사야 한다는 우리 마누라님 신념(?) 때문에 고장 난 현관 센서 등을 방치하다가 오늘 문득, 센서 장치를 끄고 켤 수 있는 스위치가 등 옆구리에 달려있다는 걸 알게 됐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작은 스위치가 등 속을 가리는 유리 커버에 가려 보이지 않았달까. '그렇다면 혹시 전선이 단전된 게 아니라 센서 장치가 고장 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센서로 들어가는 전선을 끊고 벽에서 나온 원 전원선을 전구 소켓 선과 다이렉트로 연결했다. 그러고는 동네 만물상에 전구를 사러 갔다. 전구 종류와 소켓 사이즈가 이렇게 다양할 줄이야... -_- 찍기 신공을 발휘했지만 한 번 실패 후 두 번째 운 좋게 성공! 소켓에 맞는 전구를 끼우고 스위치를 켰더니... 유레카! 처음 전구 발명 실험에 성공했을 때 에디슨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나는 그만 감격의 만세 삼창을 불렀다.


처음 든 생각은 '돈 굳었네'였고, 그다음은 '빌어먹을 센서 등', 그다음이 '산다는 건 참 뭐 하나 만만한 게 없다'라는 만고의 진리? 아! 마지막 하나 더. 우리 집 현관 등 전구 소켓 사이즈는 E17이라는 사실!


#센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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