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tenland
마르크 피어셸
82min, 독일, 2020
EIDF의 다큐멘터리 영화 <낙원>을 보면서 두 가지를 떠올렸다. PAPER 여름호에 실린 동물권 & 환경 운동가 전범선의 인터뷰와, 2021년 8월 20일 한겨레 신문에 실린 '기억해 주세요, 오로지 고기로 취급받아 죽어간 생명들을'이란 제목의 기사였다. 글 쓰고 노래하는 가수 & 작가 전범선은 동물권 단체 '동물해방운동'의 활동가이기도 한데, 인터뷰 중 '동물해방운동'이 올해 초 '불법 개농장주(겸 축산업자)로부터 구조한 소 15명(동물권 운동가들은 종 평등을 주장하며 동물의 개체 수를 셀 때 '마리' 대신 '명'을 쓰자고 제안한다)을 위한 생츄어리(안식처,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인터뷰 원고를 쓰면서도 '한국의 첫 생츄어리는 어떻게 됐을까? 15명의 구조된 소는 안식처를 찾았을까?' 몹시 궁금했었다.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소의 구조 비용 7,500만 원을 목표로 시작한 펀딩 모금은 7월 말까지 시민 1,600여 명의 참여로 목표액의 61%(4,500여만 원)를 달성했지만, 불법 축사 철거일이 앞당겨지면서 15명 중 6명만 구조가 가능한 상황이 되었고, 고심 끝에 인제군의 임시보호처로 갈 소 6명을 고른 활동가들은 구조하지 못한 소들에게 이름을 붙여준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낙원>은 '동물해방운동' 활동가들이 꿈꾸던 '동물들의 낙원'에 대한 이야기이다. '호프 부텐란트'는 전직 낙농업자 얀 게르데스와 동물권 운동가 카린 뮈크 부부가 운영하는 생츄어리의 이름이다. 호프 부텐란트는 모든 것이 동물 중심인 이상적 낙원이자 '동물이 동물일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 농장이 동물들의 낙원이었던 것은 아니다. 농장주 얀 게르데스의 (동물의 목숨이 인간이 먹고사는 문제보다 소중하다는) 깨달음과 (소의 목숨을 지키겠다는) 절치부심의 행동이 없었다면 호프 부텐란트는 여전히 젖소에게 우유를 착취하고 육우용 소를 도살장으로 보내는 공장식 축산업의 최전선 기지였을 것이고, 생명의 소중함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경제적 기부가 없었다면 이제껏 낙원의 모습으로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경제적 이익과 효율성을 우선시하는 공장식 축산의 굴레에서 착취당하다 구조된 소들이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펄쩍거리며 푸른 들판을 자유롭게 뛰노는 모습을 보다가 나는 그만 눈물을 흘렸다. 착취와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난 존재들의 자유로운 몸짓은 보는 것만으로도 큰 감동을 준다. 그러나 현실은 동화처럼 끝나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며 사랑을 독차지하던 소 '파울'은 분쇄골절(이익과 효율성을 위해 유전적으로 조작된 축산용 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관절 문제를 안고 있다)을 치료할 수 없어 안락사를 당한다. 손을 쓸 수 없는 파울의 죽음 앞에서 농장 식구들은 무기력한 자신들을 자책하며 한없이 슬퍼한다. 카린이 전해주는 이야기에는 현실의 문제가 집약돼 있다. "한 번은 수의사가 그러더군요 사실 여러분이 옳지만 여러분이 하는 일에 제도가 따라가지 못한다고요." 이어지는 카린과 얀의 겸허하고 슬픈 고해성사에는 동물권 운동의 현실적 한계와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농장에 들이는 동물을 결정하는 일은 굉장히 어렵습니다(부텐란트는 최대 45마리까지 수용할 수 있다). 거절할 때는 늘 마음이 무겁죠. 물론 세계의 모든 동물이나 소를 다 구할 수는 없죠. 그냥 운 좋게 이곳에 오는 아이들을 돌보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에요. 동물을 풀어줄 때 우리가 의도한 건 이 몇 안 되는 동물에게만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 기회를 주는 거였죠. 우리가 제도를 바꿀 수는 없었으니까요."
독일의 호프 부텐란트는 소싸움을 소재로 한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그만 좀 하소>를 보며 괴로워했던 관객들이 부러워할 만한 곳이긴 하지만, 그곳 역시 도살 위기에 내몰린 축산용 소들에게 완전한 안식처가 되지 못한다. (한국에서만 매해 약 80만 마리의 소가 도축된다) 그러나 작가 카렌 두베의 지적처럼 이것만은 분명하다. "호프 부텐란트는 대안을 보여줍니다. 현재 우리가 동물을 다루는 방식이 바뀔 수 있다는 걸 보여주죠." 그 아주 작은 가능성만으로도 호프 부텐란트의 존재는 희망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낙원 #EIDF2021 #생츄어리 #그만좀하소
* https://www.eidf.co.kr/kor/movie/view/7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