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 개척사에 대한 사려 깊은 복수극
코만치에게 남편과 아이 셋을 학살당해 실성하기 직전인 여인이 있다. 산전수전 다 겪고 무수한 전투에서 살아남은 후에 인디언을 증오하는 기병대 대위가 있다. 백인들에게 악명 높은 샤이언족 전사였으나 7년 포로 생활 끝에 늙고 병들어 '곰의 계곡'이라 불리는 고향 몬태나로 돌아가고 싶은 늙은 추장이 있다.
제대를 앞둔 조셉 블로커 대위(크리스찬 베일)에게 마지막 임무가 주어진다. 전우들의 머리 가죽을 벗긴 지난 시대의 적 옐로우 호크 추장(웨스 스투디)을 그의 고향까지 무사히 호위하는 임무다. 가는 길에, 인디언에게 가족을 잃고 실성하기 직전인 로살리 퀘이드 부인(로자먼드 파이크)을 만난다. 강줄기가 하나로 모여 강물을 이루며 바다로 흐르듯, 세 갈래 이야기와 인물의 기이하게 얽힌 여정이 눈 시리게 아름다운 서부의 풍경 속에 펼쳐진다.
<몬태나>는 지독하게 느린 '서부 활극'이다. 코만치의 습격, 총격전, 납치, 백병전이 펼쳐지지만 극의 템포는 시간을 두고 관객의 생각이 충분히 틈입할 수 있을 만큼 느리고 여백이 많다. 사건과 사연은 액션의 쾌감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유와 반성을 위해 정교하게 헌신한다. 극적 효과를 노린 결투 장면의 편집은 절제되고 총싸움은 과장이나 군더더기 하나 없이 사실적이다. 지난 시절, 적으로 마주했고 지금은 증오하는 늙은 추장의 가족을 지켜야 하는 블로커 대위, 인디언에게 가족을 몰살당한 로살리 퀘이드 부인과 인디언 가족과의 동행,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제의 적과 손을 잡아야 하는 옐로우 호크 추장의 치욕, 이 모든 모순과 갈등이 얽히면서 선과 악의 구분은 모호해지고 영화는 서부극에서 종교적 수난극으로 조금씩 나아간다.
지난 시대엔 선과 악의 구분이 명확했다. 그러나 상황의 변화와 함께 시대가 바뀌었다. 서부 개척시대엔 인디언을 죽이는 것이 죄가 아니었다. 전쟁은 끝났고 개척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더 이상 군인과 전사가 필요 없는 시대, 소명을 다한 그들은 한순간 쓸모를 다 한 퇴물이 되어 쓸쓸히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져야 할 운명에 처한(증기 기관차가 등장하는 영화의 엔딩)다. <몬태나>는 선과 악, 자아와 피아의 구분과 경계가 모호한 과도기의 상황 속에 던져진 두 인물(기병대 블로커 대위, 샤이언족 추장 옐로우 호크)이 가치관의 혼란을 겪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소명을 다하는 이야기이자 미국 서부 개척사에 대한 사려 깊은 복수극이다.
<몬태나>는 <도원경>, <더 홈즈맨>, <데드 맨> 등 미국 서부 개척사에 대한 참회를 다룬 수정주의 서부극과 한핏줄 영화다. 웨스턴 장르 영화라기보단 서부극의 외피를 쓴 종교적 묵시록에 가깝다. 영화의 메시지는 역설적이게도, 죄 없는 인디언을 도끼로 도륙한 죄로 호송되는 전직 군인 필 윌스(벤 포스터)의 대사를 통해 드러난다. "날 심판하는 건 옳지 않아요. 어느 누구도요. 난 정직하고 괜찮은 사람이에요. 난 당신과 함께 싸웠어요. 우리 모두는 죄가 있어요." 지난날 인디언 학살을 일삼았던 블레이크 대위의 회한에 찬 텅 빈 눈동자, 분견대 대원들의 혼란스러운 표정, 졸지에 가족을 잃고 새로운 운명을 만나게 된 로살리 퀘이드의 슬픈 얼굴은 <몬태나>를 종교극으로 만든다. 로살리 퀘이드의 대사처럼 인간은 '하느님의 험한 길에 결코 익숙해질 수 없'다. 삶과 생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영화는 내내 삶의 도처에 있는 죽음을 말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조셉 블로커 대위는 좋은 사람인가?, 블로커 대위의 오랜 친구 토미 병장의 자기 희생을 통한 속죄(지난 시절 인디언 학살에 대한)는 어떤 의미인가?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스콧 쿠퍼 감독은 이 질문들을 지난 시대의 장르인 서부극의 형식에 담아 '지금 미국'에 던진다. 그 질문들에는 <몬태나>가 전하는 포용과 구원의 주제가 '지금 미국'에 서부 개척시대의 성경만큼 중요한 담론이 되어야 한다는 바람이 담겨 있다.
by 타자 치는 스누피
(뱀다리)
"왜 서부극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명료하다. 미국 신화의 원형이 서부극 장르에 있기 때문이다. 수정주의 서부극 역시 장르의 큰 줄기 안에서 관습적 클리셰들을 답습하거나 뒤틀거나 뒤집음으로써 미국적 신화에 공명하거나 그 신화를 전복해왔다.
최근의 서부영화는 아름답다. 어떤 인공물보다도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 타카야나기 마사노부(<더 그레이>,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스포트라이트>, <블랙매스> 촬영 감독)의 카메라는 조명이나 자연광 아래 서부의 풍경을 눈 시리게 담아냈다. 신세대 서부극 장르는 아이맥스나 시네마스코프 화면비에 어울릴 시각적 경험의 신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주제는 첫 화면 D. H. 로렌스의 문장에 선명하게 녹아 있다. :
"The essential American soul is hard, isolate, stoic, and a killer. It has never yet melted."
(근본적인 미국인의 정신은 냉혹하고, 고립적이며, 금욕적이고, 살인자이다. 이것은 아직 한 번도 누그러진 적이 없다.)
크리스찬 베일과 로자먼드 파이크의 연기에는 이의의 여지가 없다. 두 배우는 <몬태나>를 '얼굴의 영화'로 만든다. 클로즈업 된 인물들의 얼굴에서 서부 개척사 시대의 수많은 역사적 굴곡을 본다.
<크레이지 하트>, <아웃 오브 더 퍼니스>, <블랙매스> 등 꾸준히 미국 근현대사에 카메라를 들이대 온 스콧 쿠퍼 감독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몬태나>엔 느린 호흡으로 영화를 찍으며 각본과 연출 작업을 함께 하는 그의 작품 스타일과 내공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차기작에도 크리스찬 베일(아웃 오브 더 퍼니스, 몬태나)과 제시 플레먼스(블랙매스, 몬태나)를 캐스팅할지도 궁금하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샬랄라 보이 티모시 샬라메도 나온다. 물론, 티모시 샬라메 팬이라면 몹시 분개하거나 안타까워하겠지만... ㅎㅎ
#몬태나, #수정주의서부극, #포용과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