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윤리의 스릴러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옳았다. 책장을 덮자마자 다시 책머리를 펼쳐 들었다. 아니, 내 의지가 아니다. 그렇게 만든다. 한 줌도 안 되는 분량의 이 소설은 이야기를 따라가려는 욕망의 속도만큼이나 자꾸 뒤돌아 보고 곱씹게 만드는 회한의 브레이크 또한 강렬하다. 두 가지 메커니즘이 동시에 작동하며 충돌한다. 세상에는 결승점(이야기를 달리기에 비유한다면)에 도착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최근에 읽은 <저스티스맨>도 그랬지만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경우만큼 그 욕구가 강렬하지는 않았다. 결국, 이 소설은 다시 읽기 시작했고 <저스티스 맨>은 그러지 않았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회한의 아포칼립스'다. 주인공, 아니 화자 토니 웹스터는 그의 인생에서 무엇을 놓친 것일까? 나는 그의 기억에서 무엇을 놓쳤던 것일까? 작가의 의도대로 우리는 토니 웹스터의 인생(정확히는 그의 기억)에 물음표를 붙이고, 더 나아가서 내 인생에 질문을 던진(그렇다, 나는 충분히 그럴 나이가 됐)다. 247쪽이 시작될 때까지 토니는 여전히 '전혀 감을 잡지 못'했고 영원히 '혼자였'다. 그는 여태껏 타인과의 관계 속에 산 것이 아니라 자기의 기억 속에서 살았다. 나 역시, 그리고 우리들 대개가 그와 사정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김연수 작가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줄리언 반스가 마지막 결말을 놓고 거기서부터 거꾸로 이야기를 조립해 간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덮으면서 동시에. 우리는 작가가 설치해 놓은 부비트랩(덫)에 여지없이 걸려들 수밖에 없다. 기억이 걸레처럼 누더기가 되어 가는 1인칭 화자의 서술을 경계하면서도 결국 그 덫에 빨려 들어간다. 그만큼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흡인력은 대단하다.
'시간이 자기편이라고 믿'는 할 일 없는 늙은이의 이 시시콜콜한 회고담은 결국엔 거대한 쓰나미가 되어 노년의 자아와 독자를 덮친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영화의 인물들이 구현하듯, '나만의 작은 순간들이 모여 내가 되는' 인생의 덩어리는 영원히 불가지(不可知)의 미궁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 점점의 작은 점(행위)들이 모여 이루는 거대한 점묘화(인생이라는 총체, 만약 그런 게 있다면?)를 우리는 한 눈(하나의 객관적이고 통합적 관점, 시선)에 볼 수 없다. 인간 존재의 한계이고 미스터리이며 매력이다. 유한하고 명확히 한계 지어진 존재이기에 비로소 우리는 인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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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먼저 읽을/볼까 하다가 소설책을 집어 들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반전의 재미를 극대화해 즐길 수 있는 선택은? 시간(여유)이란 게 있다면 당연히 책이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영화를 보기 전이지만 내 선택은 옳았다고 확신한다. 자, 이제 이 매혹적인 서사를 어떻게 스크린 위에 옮겼을까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허기진 배로 풍성한 식탁을 고대하며 진수성찬을 상상하는 형국이다. 물론, 대개의 경우처럼 실망하겠지? 어쩌면 극도로 허탈해져서 원작을 망쳤느니, 영화 망해라- 같은 저주를 퍼부을지도 모른다.
이 지점에서 유사한 예가 떠오른다.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 둘 다 '믿지 못할 1인칭 화자'가 이끌어 가는(거의 원맨쇼라 할 만한) 소설이고, 둘 다 영화화되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처음부터 패를 까놓고 시작한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연쇄 살인마. 그의 기억은 처음부터 독자들의 신뢰를 잃는다. 그 살인마가, 알츠하이머에 걸려 뇌가 호두처럼 쪼그라들기 직전의 살인마가 또 다른 살인마로부터 자기 딸을 지키려 한다, 는 것이 <살인자의 기억법>의 핵심 서사다. 독자들의 궁금증은 '과연 늙고 병든 살인마가 자기 딸을 무사히 지킬 수 있을까?'에 쏠린다. 물론, 맥거핀이다. 김영하 작가는 그 미끼 뒤에 '인간의 기억과 심연'을 준비해 놓았다. 그리고 송두리째 자기(화자의 진술과 인생마저)를 부정한다.
어찌 보면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와 <살인자의 기억법>은 비슷해 보인다. 모두 소설의 중반까진 환장하게 재밌다. 그러나 결말에 이르러 둘은 확연히 갈린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하나는 그 피막이 얇고 다른 하나는 밀도 높게 압착된 느낌이다. 한 마디로 파이 겹처럼 여려 겹에 그 총체의 층위가 두텁다. 다들 짐작하셨다시피, 하나'가 <살인자의 기억법>이고, 다른 하나'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이다. 무슨 얘기인고 하니, 두 소설을 비교해 읽어 보면 안다. 1인칭 화자의 뒤틀린 기억이 인간의 심연과 인생의 회고를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파헤치고 있는지. 그렇게 파헤쳐진 진실의 층위가 심해처럼 어둡고 얼마나 두터운지, 아니면 달걀로 부친 지단처럼 속이 비칠 정도로 얇디얇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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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으면서 쓴 메모 한 줄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뒤를 돌아보는 이야기. 모든 서사는 회고인가? 그러나 과거는 미래를 품고 있다. 결국 우리(독자)는 뒷걸음질 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기묘한 체험을 하게 된다.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