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의 얼굴

아버지라는 이름의 표정

by 타자 치는 snoopy

누군가의 손에는 그 누군가의 역사와 얼굴이 새겨져 있다.


이 손은 괴나리봇짐을 들쳐 업고 등하교 이십 리 길을 내달리던 소년의 것이었다. 강냉이죽 한 그릇 후루룩 넘기고 산으로 나무 한 지게 해 오는 게 죽기보다 싫었던 고모네 집 더부살이 십 대의 손이었다. 1.4 후퇴 때 임신한 어미와 누이를 이끌고 허리가 잘린 대동강 철교 밑 꽝꽝 언 강물 위를 건너며 세간살이를 구겨 넣은 구루마를 끌던 장남의 손이었다. 11번호 피난선을 놓치고 가족들과 생떼같이 헤어진 후 미군들에게 잡혀 진남포에서 적십자선 마지막 배에 올라타 난간을 부여잡고 있던 포로의 손이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목숨을 걸고 우악스럽게 철망을 움켜쥐어 넘던 청년의 손이었다. 징병된 삼팔따라지 반공 포로들과 함께 일주일 훈련받고 M1 소총 개머리판을 그러쥔 채 가야산을 누비던 400명 가야산 공비 토벌대 병사의 손이었다. 한회남 대령을 따라 상경한 서울 오류동 공군기지 기숙사에서 키위(비행 못 하는 공군 지상 근무병)로 근무하며 러시아어를 배우고 암호 해독을 공부하기 위해 볼펜을 돌리던 암호병의 손이었다. 제대 후 먹고살기 위해 조청에 사카린을 섞은 가짜 벌꿀 주스를 만들어 팔던 장사꾼의 손이었다. 스웨터 공장의 깡패들을 가외당 아래서 평양식 박치기로 한 방에 무릎 꿇린 승자의 주먹이었다. 날밤을 새워가며 직물기 쓰는 법을 스스로 익히고 요꼬로 다이마루와 스웨터를 짜느라 굳은살이 박인 산업 역군의 손이었다. 1964년 12월 19일 남산 드라마센터에 강산처럼 눈이 오던 날 하객들에게 답례로 나눠줄 모찌떡을 손수 싸던 새신랑의 그 손이었다. 결혼 축하 리본으로 치장한 대절 택시를 타고 신혼여행을 간다며 호기롭게 식장 앞을 떠났다가 사람들 몰래 남산 한 바퀴 돌고 내려 우는 엄마 손을 잡고 터벅터벅 눈 쌓인 남산 길을 걸어 내려오던 그 손이었다. 흑석동 닭집 할아버지네 닭장 옆 단칸방 판잣집에서 밥그릇 둘 수저 두 벌로 신접살림을 시작하며 새 신부를 위해 사과 궤짝으로 찬장을 직접 짜던 그 손이었다. 첫날밤을 눈물로 지새우는 아내의 등을 토닥이던 남편의 그 손이었다. 종암동 근방 유일한 초가집에서 손수 탯줄을 끊고 핏덩이 첫 아들을 받아 들던 아비의 그 손이었다. 식민지 땅에서 태어나 분단을 온몸으로 뚫고 살아남은 생존자의 손. 허리띠를 졸라매고 개처럼 일하며 아내와 자식들을 걷어먹이던 우악스럽고 거칠고 미련한 당신의 손. 시원시원한 글씨체로 꼬박꼬박 일기를 쓰고 성명학을 공부해 자식들 이름을 손수 지어주었던 섬세하고 예민하고 자상했던 당신의 손. 악다구니 인생만큼이나 모질고 질긴 혈관 속에 지나온 시간의 아우성이 강물처럼 핏대를 세우고 굽이치고 있을 것 같은 당신의 손. 당신의 손은 여래 개의 얼굴을 갖고 있는 어떤 사람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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