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좋은 날
지나 온 역사가 어떻든, 작금의 정치적 역학 관계가 어떻든, 저는 '일본'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대동아 전쟁을 획책했던 제국주의자들과 그 앞잡이들을 미워하고, 지난 세기의 역사적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아베 정권을 혐오하고, 혐한을 무기로 자신들에게 불리한 정치적 국면을 타개하려는 일본 내 극우 보수 세력을 저주할 뿐입니다. 저는 일본의 문화를 좋아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보며 자랐고 만화 <슬램 덩크>를 사랑합니다. 다코야키와 돈코츠 라면을 맛있게 먹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모두를 사고, 읽었습니다. 오즈 야스지로와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를 흠모하고 작년에 개봉한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를 너무 재미나게 보았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개봉을 손꼽아 기다렸다 꼭 보고, 이제는 깊은 잠에 빠진 키키 키린 할머니를 몹시 좋아합니다.
지금과 같은 정치·경제적 대립 속에서도 양국의 깨어 있는 사람들 사이의 민간 문화 교류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치 크리엔날레 2019'의 '소녀상' 도쿄 전시 중단과 재개 건에서도 보았던 것처럼, 정치적 상황과 무관한 순수한 문화 교류는 한겨울 두꺼운 얼음장 밑을 유유히 흐르는 겨울 강물 같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도 '일본 영화'라서 '일본 책'이라서 싫다는 분이 계시다면 할 수 없지요. 그런 분들은 안 보시면 됩니다. ㅎ
<일일시호일>은 가만히 '나를 돌아보는' 영화로도, '한 해를 차분히 정리해보는' 영화로도 아주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영화는 그냥 '좋은 영화'이니까요. 세밑 어느 밤,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이 영화의 묵직한 여백을 누리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반짝일 필요도 없다.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도 될 필요가 없다.
- 버지니아 울프
어떤 영화는 눈으로 보고, 어떤 영화는 머리로 생각하고, 어떤 영화는 몸으로 느낀다. <일일시호일>은 머리로 아는 것과 마음으로 아는 것의 차이를 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영화다.
평생을 걸 무언가를 찾고 싶었지만 정작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뭔지도 모른 채 젊음을 흘려보내고 있던 노리코(쿠로키 하루)는 우연한 기회에 사촌 미치코(타베 미카코)와 함께 다도(茶道)를 배우게 된다. 노리코와 미치코의 다도 수업을 어깨너머로 참관하며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노리코가 겪는 일상의 농담(濃淡)과 다도를 배우는 사이 흘러가는 절기의 변화 속에 시간의 마디가 알음알음 만져지고, 차의 향기와 켜켜이 쌓여 가는 계절의 나이테가 깊게 우러난 찻물처럼 화면을 가득 채웠다가 이내 우리 마음에 스며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 몸에 힘을 빼고 정갈하고 따뜻한 그 세계에 슬며시 젖어 들어가다 보면, 다도의 절차와 세상의 이치를 머리를 써서 따지고 이해하려고 버둥거리는 노리코에게, 다케다 선생님(키키 키린)이 부드럽게 타이르는 듯한 목소리가 들린다. “머리로 생각하지 말고 손(몸)을 믿어요”
그때는 몰랐다. 매일 먹어도 물리지 않는 집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란 것을. 멀리 있어 내가 욕망하는 것보다 손에 닿는 평범한 일상의 반복이 참 행복일 수 있다는 것을. 밋밋하고 투박한 기본음이 화음의 가장 중요한 성부(聲部)를 이루고 소리의 구조가 무너지지 않게 떠받치고 있다는 것을. 어린 시절 부모님 손을 잡고 따라가서 봤던 영화 <길>이 얼마나 좋은 영화인지 어른이 된 노리코가 뒤늦게 알게 된 것처럼, 봄마다 쑥을 뜯어 들통에 쪄주던 엄마표 쑥개떡의 밋밋한 맛이 얼마나 속 깊은 것이었는지 나 역시 그때는 미처 몰랐다. 복잡한 다도의 절차 앞에서 쩔쩔매는 노리코에게 다케다 선생님은 자분자분 가르침을 건넨다. “머리로 따지면 안 돼요. 무언가를 배우기보다는 익숙해져야죠. 반복이 중요해요. 하다 보면 손(몸)이 먼저 움직여요··· ”
깨달음의 순간은 불현듯 찾아온다. 다도의 격식을 배우며 해마다 절기의 변화를 온몸으로 곱씹는 사이, 노리코는 자신 안에서 무언가 조금씩 바뀌어가는 것을 느낀다. 다도의 절차를 머리로 흉내만 내며 따라가던 어느 해 입추, 노리코는 문득 장맛비 소리와 가을비 소리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족자의 글자는 머리로 읽지 않고 그림처럼 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족자 속 한자를 보면서 장쾌하게 떨어지는 폭포의 물줄기에 젖어 들어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고, (경쾌한) 찬물 소리와 (뭉근한) 더운물 소리 역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우친다.
어린 시절 설익었던 노리코는 조바심을 냈고 남들과 자신을 끝없이 비교했으며 부러움과 질투 사이를 하릴없이 오갔다. 다도의 절차가 계절의 변화와 발을 맞추어 노리코의 몸속으로 흘러들어 조금씩 익어갈 무렵 그녀는 자기 자신과 오롯이 마주하게 된다. 비록 ‘솜씨가 부족하고 센스가 없는’ 그녀이지만 매일매일 마음을 다해 차를 내리고 성심껏 누군가를 대접하는 일을 반복하는 사이, 젊음을 잃어가는 육신에 원숙한 영혼이 깃드는 순리처럼, 마흔이 된 노리코는 맑은 차 한 잔을 닮은 깨달음을 얻는다. 형식이란 마음을 담는 그릇이고 ‘길을 아는 것’과 그 ‘길을 걷는 것’이 다르다는 것, 같은 날은 다시 오지 않으니 눈앞의 지금을 생애 단 한 번뿐인 순간이라 여기고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오랜 시간을 들여 조금씩 깨달아 간다. 작은 깨침이 그렇게 머리에서 가슴까지 두 뼘을 내려와 ‘내 것’이 되기까지 (다도를 배우기 시작한 후) 꼬박 스물네 해가 걸린 셈이다.
그제야 젊은 날 입으로만 읽었던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다섯 글자의 뜻이 쩡하게 머리를 때린다. 비 오는 날엔 빗소리를 듣고 온몸으로 그 순간을 맛보는 것, 눈 오는 날에는 눈을 보고, 여름에는 찌는 더위를, 겨울에는 살을 에는 추위를 느끼는 것, 다시는 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을 마음을 다해 맞이하고 떠나보내는 것, ‘매일매일 좋은 날’이란 그런 뜻이 아닐까?
노리코는 서두르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와 자기만의 방식으로 날마다 조금씩 ‘자기 자신’이 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일일시호일>은 조근조근 쌓여가는 시간의 주름 속에서 나를 비우고 ‘진짜 나’를 찾아 떠나는 한없이 더딘 로드무비다. 그 길을 머리로만 따라가지 말았으면 싶다. 사람들이 ‘삼천배’를 하는 이유는 육신을 부리는 동안 나를 잊기 위함이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따라 걷는 순례자들은 몸이 길을 밀고 나가는 동안 자기도 모르게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던 고민과 걱정을 비워내기 마련이다.
그녀는 조금씩 흔들리면서 자신만의 길을 내고 있다. 남들 눈엔 그 길이 좁고 외진 오솔길 같아 보일지라도 노리코에겐 ‘자기 자신’에게 가는 크고 넓은 길일 것이다. 노리코를 따라 100분 동안 그녀의 여행에 동행하면서 그녀가 정갈하게 내려주는 차 한 잔과 조용히 사랑에 빠져보고 싶다.
by 타자 치는 스누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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