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을 기대하고 극장에 갔던 관객들이 <반도>를 보고 시간이 아깝다며 욕을 하거나 평점을 낮잡아 매기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도>는 <부산행>과 다른 영화일 수밖에 없고 다른 영화여야 했는데 부정적 관람평을 쏟아내고 있는 관객들은 한계 상황 속을 달리는 폭주기관차 같았던 <부산행 2>를 기대하고 극장에 갔던 게 틀림없다. <반도>의 문제는 '알맹이 없는 껍데기'(스토리 없이 특수 효과나 C.G. 등 비주얼로 처바른 공갈빵 같은 영화들)여서가 아니라 오히려 차고 넘치는 스토리텔링 속에 어깨와 눈에 너무 힘을 주고 '억지 이야기(신파와 감동 코드)'를 심으려 했던 의식의 과잉에 있는 게 아닐까? <두사부일체>나 <1번가의 기적> 등 조폭 코미디 장르의 등장 이후로 한국 영화는 왜 순혈 오락영화를 부끄러워하며 눈물 한 스푼, 감동 두 스푼의 신파 코드를 억지 춘향식으로 끼워 넣어야만 할 것 같은 강박의 작법 DNA를 싸구려 문신처럼 몸에 새기려 하는 것일까. 태생적으로 영화는 2시간 내내 재밌게 즐거우면 안 될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킬링타임용'이란 말이 천박한 B급 비디오 영화의 대명사로 각인된 이 기형적 분위기가 나는 때로 숨이 턱턱 막힐 만큼 지루하고 답답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예술합네 하고 유난 떠는 XX 같은 영화보다 <히트맨>이 100배는 재밌더라!’라던 유희 씨 말에 200% 공감.
<반도>는 <엑시트>처럼 제법 잘 만든 오락영화라고(영화에 꼭 어떤 메시지가 있어야 하나?), 나는 생각한다. 문제는 어떤 종류의 영화든 간에 '완성도가 있느냐 그렇지 않으냐'가 아닐까? 러닝타임 내내 내 눈길을 사로잡은 영화의 히어로가 우리가 기대했던 강동원이 아니라 '드리프트 소녀(이레, 준이 역)'였다는 반전을 빼고 나면 <반도>는 충분히 재밌게 잘 만든 한국형 <매드맥스>였다. 김노인(권해효)이 총에 맞으면서 <영웅본색>류의 슬로 모션이 걸리고 비장한 음악이 흐르기 전까지 시간은 잘 소비되었고 영화에의 완성도나 몰입도도 괜찮았다. 오락영화에도 꼭 뭔가(주제라든가 사회적 메시지라든가)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영화의 리듬을 그르치고 신파의 재앙을 불러왔다. 시간은 한없이 늘어지고 '이 부분에선 꼭 울어야 해! 레디... 액션!'의 강요가 관객들의 닭살을 각성시켰을 때, <반도>의 시계는 80년 대 신파로 거꾸로 흘러갔다. 칸느의 레드 카펫을 의식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쌍팔년도 신파가 요동치던 클라이맥스 장면을 장기 적출하듯 깔끔하게 들어내고 나면 <반도>는 <서울역>, <부산행> 좀비 3부작의 대미로 웰메이드 오락영화의 신화를 완성하며 코로나 시대에 천만 관객 동원의 쾌거를 이루는 영화가 됐을 지도 모른(개봉 5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뉴스를 보니 설마가 사람을 잡을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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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의 극장 조조 풍경 : 체온 측정 후 무인 입장
영화 시작 전 엔니오 모리코네를 추모하는 영상을 상영한 건 정말 굿 아이디어!?
영화가 끝나는 순간부터 '빠빠빠 빠빠빠 빠빠빠빠 빠빠빠...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 멜로디의 무한 루프 지옥에 빠진다.
가장 자연스러운 연기는 강동원이나 이정현이 아니라 택시녀(황연희)와 아역 배우 이예원이 보여주었다.
설마설마했는데... 제인이 왜 거기서 나와?
#반도 #드리프트소녀 #이레가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