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박스 The Lunchbox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by 타자 치는 snoopy

(<PAPER> 2020년 여름호 '맨발의 영화' 원고입니다.)




어느 봄날, 우리에게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로 친근한 인도 배우 이르판 칸의 부고를 접했습니다. 그의 죽음 앞에서 제일 먼저 생각난 영화는 <런치박스>였습니다. 비록 2013년에 개봉한 영화이지만, 이 영화를 통해 알게 된 인도 뭄바이 '다바왈라'들의 도시락 배달 시스템과 알듯 모를 듯, 슬픈 듯 기쁜 듯한 그의 표정을 꼭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때마침 지인들과 함께 손편지 쓰기 모임을 시작한 터라 <런치박스>에서 '사잔'과 '일라'가 주고받는 도시락 편지가 한결 각별하게 느껴졌거든요. 저는 영화 내내 목소리만 들리는 '앙띠'(인도 말로 이모)의 모습이 몹시 궁금했습니다. 이 리뷰를 읽고 만약 당신이 <런치박스>를 보게 된다면, 사잔과 일라와 함께 '잘못 탄 기차'에 올라타 모험 같은 여행을 떠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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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 영화 <런치박스 (The Lunchbox)>




처음 계획은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롭스크에 가는 것이었다. 6개월 전 프로모션 항공권을 끊고 숙소와 시베리아 횡단 열차표를 예약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항공사가 노선 운휴를 결정했다. 날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어찌해야 할지 난감했다. 예정된 휴가는 가야겠기에 급한 대로 손에 잡히는 아무 곳이나 가기로 했다. 작년 여름휴가 여행은 꿈에서조차 생각해본 적 없던 폴란드로 그렇게 떠났다.



인생도 여행처럼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계획대로 되는 것과 계획했던 바가 어긋나는 것들이 뒤섞여 우리 삶의 무늬를 만들어 간다. 우리는 성공보다 더 많은 실패를, 만족보다 늘 뭔가 아쉬움을, 성취보다 더 잦은 어긋남을 맛보며 밑바닥으로 굴러떨어지거나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간다. 삶의 여정을 기차 여행에 비유한다면 누구에게나 종착역은 정해져 있다. 생명은 무엇이든 소멸한다. 문제는 목적지까지 누구와, 어떻게, 무엇을 하며 가느냐이다. 어떤 여행을 하게 될지는 각자의 재량이나 운에 달렸다. 계획은 자주 어그러지고 신의 섭리는 종종 우연의 얼굴을 한 채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기 때문이다.



인도 뭄바이에 사는 ‘사잔(이르판 칸)’은 퇴직을 앞둔 공무원이다. 아내를 잃고 외롭게 살아가던 그에게 어느 날 처음 보는 점심 도시락통이 배달된다. 매일 아침 인도 뭄바이에서는 5,000명이 넘는 도시락 배달원 ‘다바왈라’들이 집에서 부인들이 만든 20만 개의 도시락을 남편 직장에 배달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요즘 관계가 소원해진 남편을 위해 정성껏 싼 ‘일라(님랏 카우르)’의 도시락이 생판 남인 사잔에게 배달되는 사고가 난 것(배달 사고가 날 확률은 600만분의 1에 불과하다). 사잔은 영문도 모르는 채 오랜만에 먹어보는 맛있는 도시락을 싹싹 다 비웠고, 돌아온 빈 도시락통을 받아 든 일라는 남편의 무관심에 지쳐 잊고 지내던 행복의 기억을 되살려낸다. 날마다 도시락통은 비어 돌아오는데 여전히 무심한 남편의 모습을 보며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일라는 남편 대신 자신의 도시락을 맛있게 먹어주는 무명씨가 궁금해 편지를 써 보낸다. 이 작은 어긋남이 사잔과 일라의 무미건조했던 일상에 미세한 균열을 만들기 시작한다. 얼굴도 모르는 채 주고받기 시작한 도시락 편지는 음식과 자잘한 일상 얘기에서 가족과 삶에 대한 속내를 담은 진솔한 대화로 뿌리를 뻗으며 깊어진다.



일본 영화 <선생님과 길고양이>에는 ‘빠르게 흐르는 개울에 대나무 장대를 꽂는 셈’이라는 격언이 나온다. 물길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 물길을 만들기 위해서’ 대나무 장대를 꽂았다는 뜻이다. 영화 <런치박스>는 누군가 꽂은 대나무 장대 때문에 마음의 물길이 바뀐 사람들의 이야기다. 일라가 정성을 담아 만들어 보낸 도시락과 사잔이 연민과 감사를 꾹꾹 눌러 써 보낸 편지는 서로의 개울에 꽂은 대나무 장대가 된다. 무릇 생명은 무심한 강물처럼 서로 몸을 섞거나 부딪치며 유유히 흘러가고 관계의 심연 안에서 우연과 인연은 한 끗 차이로 모습을 드러낸다. 아내와 나는 엄마가 죽은 해에 처음 만났다. 맞선 자리였다. 몇 번 얼굴을 보다 인연이 아닌 것 같아 기약 없이 헤어졌다. 연락이 끊긴 지 1년쯤 지났을까? 태풍 소식을 전하는 TV 뉴스 특보에서, 우면산에서 쏟아져 내린 토사가 덮치고 물에 잠긴 사당역 사거리를 목격했다. 아내의 친정 근처였다. 잠이 오질 않았다. 밤새 고민하다 다음 날 안부 문자를 보냈다. 우리는 그렇게 다시 만났고 몇 달 후 부부가 되었다. 그해 여름, 태풍이 와서 우면산이 무너지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어찌 됐을까? 가끔 그때를 떠올리며 우리는 운명이나 인연의 신기함 따위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



인간은 섬이다. 함부로 알 수 없는 섭리로 점점이 연결된 채 조금씩 흔들리며 어딘가를 향해 흘러가는 섬과 같은 존재. 영화를 보던 나는 그 사실을 명료하게 깨달았다. 고양이 솜털처럼 가벼운 삶의 찰나 속에 신의 섭리가 숨어 있기도 하다는 것을. 사잔과 일라의 강물 역시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채 조금씩 몸을 뒤척이며 일렁이고 있다는 것을. 벌어진 작은 틈 사이를 비집고 무엇이 자랄지 짐작도 못 한 채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들며 잊었던 행복을 느끼거나 누군가가 나를 위해 만들어 보내준 도시락을 맛있게 먹으며 기쁨에 젖는 두 사람은 삶의 허무 앞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 도시락 편지로 전해지는 서로의 이야기를 부둥켜안는다. 그러는 사이 편지를 기다리는 시간도 사연이 되고 누군가를 생각하며 재료를 사서 조리하는 시간까지 음식이 된다. 누군가에게 먹일 음식을 정성껏 만들거나 펜을 들고 종이 위에 편지를 써본 적 있는 사람은 안다. 그 시간은 편지를 쓰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먹이려는 사람이나 먹는 사람 모두에게 충일(充溢)한 기쁨을 선물한다는 것을. 바쁘다는 핑계로 우리가 잊고 지내는 그 소중한 시간의 의미를.



모든 여행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여행이 끝나지만 여행의 끝은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계획했던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더라도 실패한 여행은 없는 법이다. 어디에 도착하든 모든 떠남은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한소끔 끓어올랐던 꿈과 한 호흡을 돌아온 여행이 끝나는 자리에서 사잔과 일라는 다시 새로운 여행을 떠났을까? 작년 여름, 폴란드로 떠났던 휴가 여행이 어땠냐고? 계획에 없던 폴란드 여행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준다’는 일라의 편지 글귀처럼 살면서 가끔 기차를 잘못 타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잠이 드는 밤, 나는 짙은 향신료 냄새가 나는 부탄의 꿈을 꾸었다. 꿈의 양 끝 귀퉁이에 사잔과 일라가 아스라이 서로를 마주 보고 서 있는 꿈을.



이른 봄꽃 소식과 함께 이르판 칸의 부고를 들었다. <런치박스> 생각이 나서 오랜만에 다시 봤다. 화면 속에서 일라의 ‘에그플랜트(가지) 요리’를 먹는 그가 웃고 있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글 전영석(타자 치는 스누피) <instagram.com/snoopy_type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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