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여기가 레알 액션 & 연기 맛집

by 타자 치는 snoo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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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가스를 먹으러 간다 치자. 맛집이라 줄까지 섰다 치자. '꼭 그렇게까지 해서 먹어야 했니?'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처음 먹어보는 메뉴여서가 아니라 익히 알고 있던 맛을 새롭게 즐기고 싶어서 기꺼이 줄을 서는 수고를 마다 않을 거라고 많은 이들이 답할 것이다. 지겹게 반복되는 인기 뮤지컬이나 오페라 공연의 사골 레퍼토리를 보라. 우리가 모차르트나 바흐의 곡을 몰라서 클래식 공연을 보러 가거나 음반을 찾아 듣는 것이 아니듯 세상에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기쁨뿐 아니라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을 새로운 레시피로 맛보는 과정의 즐거움도 있는 법이다.


어디서 본 듯한 클리셰 범벅에 관객의 오감이 경기를 일으킬 만큼 센세이션 한 새 메뉴는 아니었지만,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익히 알려진 흔한 메뉴와 재료를 제대로 가공한 레시피로 제법 스웩이 넘치는 근사한 맛을 제공해 준다. 관람 포인트는 뻔한 메뉴를 어떤 느낌으로 새롭게 구현했을까 하는 것. <다만... >은 뉴트로(New + Retro)의 전략을 완성도 높게 수행한다. 클리셰투성이라고 투덜대지 말고 고감도 변주를 즐기면 된다. 어차피 세상은 클리셰투성이니까.


연결 고리가 엉성한 서사, 종종 어색한 연기(황정민의 멜로), 한국 영화의 고질인 클라이맥스 설명조 대사, 예측 가능한 결말과 준비된 반전(유이가 엄마가 되면서 새로운 가족을 얻게 된다는), 진부한 클리셰의 대명사인 감초 신파 등으로 생긴 아쉬움은 중량감 넘치는 배우들의 빠른 등장과 퇴장(송영창, 최희서), 살아 꿈틀거리는 홍경표 촬영감독의 카메라, 상상력을 건드려서 관객 스스로 스토리라인을 설계하게 만드는 간결하고 쿨한 편집(절제와 생략을 통한 속도감), 쌍팔년도 홍콩 영화의 비장미 대신 mtv 뮤직비디오 느낌의 경쾌한 슬로 모션, 출연한다는 정보마저 미디어에 노출시키지 않고 왜 꽁꽁 봉쇄했는지 (보고 나면) 충분히 납득하게 만드는 박정민의 갬성 연기(여성이 아니라, 여자가 되고 싶은 트랜스젠더의 욕망을 육화시킨 말투와 제스처의 디테일에 소름), 드디어 제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은 <관상>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배우 이정재의 신들린 연기(이정재의 얼굴에서 먹이를 덮치는 맹수의 무표정과 서글픈 눈을 보았다), 극의 중심을 꽉 잡고 버티고 선 황정민의 믿고 보는 관록, '제2의 김새론' 박소이라는 배우의 발굴 등으로 얼마든지 상쇄된다.


내일 없이 오늘만 사는 놈(인남, 황정민)은 텅 빈 눈동자로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오늘만 사는 놈은 두려움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잊고 지내던 내일(유민, 박소이)이 생겼다. 지키려는 것이 피붙이의 목숨이라면 그 싸움의 무게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삶에 대한 연민과 미련이 생긴 킬러는 인간적인(약한) 존재로 전락하고, 지켜야 할 게 생긴 놈, 내일(파나마)을 꿈꾸게 된 놈(인남)은 결국 오늘만 사는 놈(백정 레이, 이정재)에게 죽는다. 지키려는 자 VS 뺏으려는 자, 처음엔 그 두 세계의 대결이라 생각했다. 다 보고 나니 선과 악의 이분법이 아니었다. 인남, 레이, 유이, 셋 다 지키려는 자의 이야기였다. 아무리 개똥이라도 목숨을 걸면 신념이 된다. 레이는 자기 신념(폭주하는 복수)을 지키려 몰입한다. 인남은 목적을 잃고 부표처럼 떠돌던 삶에서 자기가 버렸던 것, 자기 것이었다는 것을 몰랐던 것(가족)을 건져내고 지키려 한다. 길을 잃었던 인남은 (자신이 지키려는 것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슬픈 소명을 얻는다. 인남과 레이는 둘이되 한 몸이다. 유이 역시 마찬가지다. 자기를 버리고 이국 땅에서 또 다른 자기(젠더 정체성)를 찾으려 배회 중이다. 셋은 모두 자기 삶의 주인이 아니며 '비어있다'는 점에서 한 사람이다.


잘 연마된 추격 스릴러의 장르적 쾌감은 흡인력이 쩔고, 킬러 대 킬러, 악마와 수호자의 대결 구도는 선명한 단순함으로 이야기를 밀고 나가는 힘이 넘친다. 무의미한 삶은 개미지옥과 같다. 세 인물은 개미지옥의 구덩이에서 벗어나려 각자의 방식(청부 살인, 복수, 성전환 수술)으로 몸부림친다. 그러나 목적을 이룬다 해도 그들의 삶은 충분히 채워질 수 없기에 각자의 노력은 같은 무늬와 색깔로 처절하고 슬프고 허망하게 닮았다. '백정 레이'의 텅 빈 슬픔은 가장 짙은 어둠 속에 있다. 인신매매 조직의 보스 '란'이 레이에게 왜 그렇게 인남에게 집착하느냐고 이유를 물었을 때 "그게 뭐였는지 이제 기억나지 않아,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된 마당에 이제 와서) 이유가 뭐가 중요한가?"라고 되묻는 장면은 그래서 뼈 때리게 깊고 슬프다. 불가능할 것 같던 구원은 엉뚱한 곳에서 손을 뻗어 온다. 속죄와 자기희생(인남), 외부의 힘에 의한 강제 종료(레이는 스스로 멈출 수 없다), 부성/모성의 대상을 떠맡음(유이)을 통해 그들은 비로소 무간지옥에서 벗어나 구원과 안식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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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미친 듯 영화를 찍어냈던 세기말 한국 영화의 징후와 냄새를 맡았다. 한국 영화 르네상스 시기(1996년 ~ 2003년), 류승완(세상을 씹어먹겠다는 패기와 결기,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김지운(폭력적 광기의 우아함, <달콤한 인생>) 박찬욱(처절한 복수와 서늘한 광기의 하드보일드, <올드 보이>)의 향기가. 이야기 얼개, 스타일과 전개 방식은 <아저씨>(소녀와 아저씨, 스타일리시한 액션의 재창조)를 빼다 박았다. 영화의 주제는 '내일을 사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한테 죽는다' 한 문장으로 요약 가능. ㅎ


익숙한데 낯설다는 게 이 영화의 장점. 낯선 배우들(이서환, 영배 역 및 태국 현지 캐스팅)과 현지 로케이션 촬영이 환기시키는 진짜 같은 기시감.


이정재 연기 얘기를 안 할 수 없음. 칼을 휘두르며 상대를 덮치는 모습은 한 마리 맹수의 그것. 무채색의 비어있는 눈동자, 희고 긴 코트와 수트빨, 새끼손가락의 자세와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조합(이런 시그니처를 선보인 킬러는 또 처음). <관상>에서 한 마리 우두머리 늑대 같았다면 <다만... >에서는 피에 굶주린 호랑이랄까... 드디어 몸에 딱 붙는 옷을 찾아 입은 느낌? 레이의 대사가 적었던 것도 신의 한 수.


뒤틀린 세 인물은 목적지를 상실한 채 궤도를 이탈한다. 이상향(파나마)에 도착하는 인물은 인남이 아니라 가능성이 가장 낮아 보였던 유이. 두 명의 선지자(인남과 레이)가 세례 요한처럼 유이의 결핍을 새로운 가능성으로 인도한다. 트랜스젠더 남성과 부모 잃은 소녀로 이루어진 불완전한 가족의 탄생. 박정민이 연기한 유이라는 인물을 보고 있으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수필집 <걷는 듯 천천히>의 한 대목이 생각난다. "결핍은 결점이 아니다. 가능성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계는 불완전한 그대로, 불완전하기 때문에 풍요롭다고 여기게 된다."


심각한 극 분위기를 순식간에 바꾸는 캐릭터로서 매 순간 박정민의 연기는 빛났지만, 유이라는 인물의 깊은 어둠(여자가 되고 싶은 욕망과 부성/모성의 혼재와 혼돈)을 제대로 묘사하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


제목을 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로 지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미궁.





코로나 시대, 한국 영화의 선전이 반갑다. <오케이 마담>으로 재림한 기 센 언니 엄정화. '나 엄정화야. 나 아직 안 죽었어'라는 선전포고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그래도 최고 기대작은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시대를 한참 앞서갔다 망했던 저주받은 걸작 <시실리 2Km>의 신정원 감독이 장항준 감독의 시나리오와 함께 돌아왔다! 예고편만 봐도 헉헉(설마 그게 다는 아니겠...). 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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