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 왕, 피아니스트의 시선

Through the Eyes of Yuja Wang

by 타자 치는 snoo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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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 왕은 피아노 음악과 함께 유랑하는 떠돌이 여행자다. 그녀는 그녀의 피아노 테크닉만큼 현명하고 매력적이다. 청중들은 그녀에게 열광한다. 그러나 그녀는 안다. 그들이 열광하는 대상은 짧고 달라붙는 드레스와 하이힐로 무장한 채 속사포처럼 건반을 두드리는 자신이 아니라 뭔가 더 크고 거대하게 빛나는 것이라는 것을. 유자는 오늘도 세계를 여행하며 세상으로부터 자신이 부재하는 시간과 자신으로부터 세상이 부재하는 시간의 과정을 농밀하게 즐기고 있다. 새로운 피아노에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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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안전벨트를 맨다. 비행기가 착륙하는 중이다. 비행은 여행과 상반된다. 당신은 불연속의 공간을 가로질러, 허공에서 사라진다. 그동안 당신은 어떤 곳에도 지속적으로 머물지 않는데, 그러한 머묾도 시간 속의 공간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이 떠났던 장소와 시간과는 전혀 관계가 없을 어떤 장소로 어떤 순간으로 다시 떠난다. 그사이 당신은 무얼 할까? 세상으로부터의 당신의 부재, 당신으로부터의 세상의 부재를 어떻게 채우고 있을까? 당신은 독서를 한다. 이 공항에서 저 공항으로 옮겨 가면서 책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페이지 너머에는 공간과, 중간 기착지와, 당신을 태우고 먹여 주는 금속의 자궁과, 항상 다르면서도 또 항상 같은 수많은 승객들의 익명성만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특징 없이 균일화된 활자체와 함께하는 여행의 이런 또 다른 추상성에 집중하는 게 좋을 듯하다. 여기서도 당신이 지금 허공이 아니라 무언가의 위를 날고 있다고 설득하려 하는, 환기력을 가진 이름들이 있다.



-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 이탈로 칼비노, 2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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