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영화답게 만드는 것들
바르토크의 음악을 들으면 왠지 야외에 있는 기분이다. 그의 곡을 들으면 때 묻지 않은 대자연 속을 거닐며 변덕스럽게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기는 감각에 빠진다. 헝가리,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동유럽부터 중부 유럽에 걸친 민속음악 수집가이기도 했던 바르토크의 멜로디에는 다른 작곡가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토착성이 있다. 그것이 가자마 진이 갖는 야생성과 맞물려 신비한 역동성을 자아내는 것이다. 이런 효과는 다른 참가자들은 만들어내지 못한다. 2차 예선 목록을 봤을 때도 느꼈지만 가자마 진의 소리에는 '자연의 소리'가 있다. <작은 새에게 설교하는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에서는 정말 작은 새가 지저귀는 것만 같았다.
제2악장 아다지오. 차분하고 장엄한 오케스트라 도입부. 숲 속을 천천히 거니는 사슴이 보이는 듯하다. 희미한 안개가 피어오르고, 쌀쌀하지만 어딘가 신비한 공기가 팽팽하게 차오르는 아침. 밤은 아직 완전히 걷히지 않아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정적이 주의에 감돈다. 어느덧 아야도 그 차가운 아침 안개 속을 거닐고 있었다. 아야는 이미 분석가도, 관객도, 연주가도 아닌, 그저 편안한 기분으로 아침의 숲을 산책하고 있었다. 피부에 와닿는 차가운 물방울이 상쾌했다. 발밑에서 마른 가지가 똑 부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우윳빛 안개 속에 한 줄기 빛이 쏟아졌다. 지금은 어둡지만 맑은 날이 될 것 같다. 사슴이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든다. 멀리서 다가오는 무언가를 느낀 것이다. 높은 곳에서 새가 운다. 지저귄다. 노래한다. 날개를 펴고 하늘을 가로지른다. 아침 안개가 조금씩 걷히고, 피아노를 치고 있는 가자마 진의 모습이 보인다.
- 670 ~673쪽, <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문자의 공간은 광활하다. 한계나 장애가 없다. 문자와 문자 사이의 여백은 읽는 이를 상상하게 만든다. <개미>를 쓸 때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구체적 이미지로 흉내 내지 못할, 문자 텍스트로 만든 세계를 짓는 것이 소설 쓰기의 목표였다고 고백했다. 영화가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상상력의 세계. 책을 손에 든 어느 감독은 카메라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영화는 이것(책, 문자 세계의 상상력)을 여기(카메라, 구체적으로 구현된 이미지의 세계)에 집어넣는 것'이라고.
영화의 이미지와 사운드 속에서 온다 리쿠가 한 땀 한 땀 묘사한 음악의 세계가 물방울의 춤, 검은 말의 생명력으로 꿈틀거린다. 이미지와 사운드는 영화만의 것, 영화를 영화답게 만드는 재료다. 이미지와 이미지의 몽타주, 이미지와 사운드의 몽타주, 사운드와 사운드의 몽타주가 '세상의 모든 소리가 음악이다'라는 소설의 주제를 영화답게 설파한다. 글로 읽었을 때와는 다른 감각의 세례가 온몸으로 쏟아져 내리는 황홀경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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