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정 생각구독 no.41 | 진화에는 방향이 없다)
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실천한 사람이 피터틸이다.
그는 스탠포드 대학에 입학했을 때,
경영대학원 친구들이 저마다 하고싶은게
분명 다 달랐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4학년이 되면 서로의 욕망을 모방하다가
모두 컨설턴트, 금융업계 종사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나는 아직도 부러움을 많이 느낀다.
일잘러들과 함께 일하는 기회,
wow가 절로 나오는 기획,
디자인부터 기능까지 훌륭한 상품들.
하지만 지금까지 경험을 되돌아보면,
그걸 하는 사람들이 멋있어보이는 것과
내가 진짜 그것을 원하는 것은 달랐다.
René Girard 의 미메시스 이론처럼,
인간의 욕망은 종종 모방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내가 직접 겪어본 것, 본 것, 들은 것 안에서만 욕망을 확장할 수 있다.
그래서 주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다음이 다르다.
직접 경험해보느냐, 아니면 부러워만 하느냐.
20대 때는
“저 사람 멋있다”라는 생각이 들면
일단 만나보고 싶었다.
그렇게 만났던 사람이 취다선의 일소님이었다.
그때 나는 취다선 같은 걸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일소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영적인 걸 하고 싶어 하는군요.”
나는 그 말이 조금 의아했다.
나는 그냥 멋있어 보였을 뿐인데,
내가 무엇을 다루고 싶은지조차 명확하지 않았다.
산업에 대한 이해 구조가 전혀 없었다.
몇 년 뒤 에어비앤비를 해봤다.
공간을 소유하고 임대하는 숙박업.
겉으로 보기에는 멋있어 보였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그 업의 대부분은 청소와 C/S였다.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나는 리조트의 대표라는 자리를 욕망했던 걸까?
산업이 아니라 그 자리에 서 있는 나를 상상했던 건 아닐까.
셀러를 처음 시작했을 때도 비슷했다.
그냥 “쇼핑몰 같은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유통업을 한다는 개념은 머릿속에 없었다.
해보고 나서야 보였다.
이 산업의 전체 파이는 얼마나 되는지,
이 안에서 내 위치는 어디인지,
보여지는 일과 반복해야 하는 일의 차이는 무엇인지.
결국 해봐야 보인다.
해보기 전까지는 산업이 아니라 이미지다.
여러 가지를 경험하고 나니
이제는 가지를 치는 감각이 조금 생겼다.
무성하게 뻗어본 사람만이 어디를 잘라야 할지 안다.
그리고 하나 더 알게 됐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산업을 욕망했다기보다
그 자리에 서 있는 나를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다.
“멋진 사람들과 일하는 나.”
“wow가 나오는 기획을 하는 나.”
“훌륭한 상품을 다루는 나.”
그 모습이 좋아 보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서면 나도 더 가치 있어질 것 같았다.
부러움은 자연스럽다.
문제는 그것을 그대로 믿어버리는 것이다.
이제는 부러움이 올라오면 한 번 더 묻는다.
이걸 정말 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인정받고 싶은 걸까.
부러움은 모방이고, 실행은 검증이다.
나는 여전히 부럽고 여전히 흔들린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부러움을 바로 추종하지 않고
한 번은 직접 부딪혀보고,
아니면 조용히 접을 줄 안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내 기질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남의 떡이 커 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막상 손에 쥐어보면
크기보다 중요한 건
내가 그 떡을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인가 하는 문제였다.
내가 가진 것을 지키면서 확장하는 것.
요즘 내가 연습하고 있는 태도다.
이 글은 윤소정의 생각구독을 발판삼아 생각하고 글쓰는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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