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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널드 Mar 25. 2017

내가 Nerd였다니

주의: 방문은 살살 닫을 것

  질풍노도의 시기, 부모님과의 마찰은 피할 수 없다. 이제 부모님과 대등해졌다고 생각하면서 친구들에게 "나 오늘 엄마한테 혼났어"라는 표현보단 "엄마랑 싸웠어"라고 말하기 시작한다. 싸웠다는 표현을 쓰는 주된 이유는 나도 맞받아치기 때문이다. 그래 놓고 마음속으로는 늘 조마조마해한다. 이 심리를 표출하지 않으면 반항이지만, 밖으로 나오는 순간 nerd가 된다.


  부모님의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 부모님의 경우 자식을 혼낸 적이 거의 없는데, 혼나는 경우는 딱 두 가지였다.

1. 교회를 땡땡이친 경우

2. 문제집 뒤에 답지를 베낀 후 안 베낀 척 식도 써놓고 밑줄도 간간이 긋는 경우


  2번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만둘 수 있었지만 1번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부모님께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데 반해 돌연변이 유전자 때문인지 나는 그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당신들이 지금까지도 자식에게 요구하는 유일한 바람이 '교회 가기'다. 일요일 한 시간 투자 정도는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아쉽게도 그 정도도 못 들어드릴 때가 많다. 토요일 저녁엔 뭐가 그렇게 술 약속이 많고 일요일 아침엔 뭐가 그렇게 재밌는 TV 프로그램도 많은지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더했다. 부모님은 성가대 때문에 원래 예배시간보다 교회를 일찍 가신다. 나는 부모님과 동행하지 않기 때문에 맨날 안 가거나 늦게 가거나 한다.


  중학교 2학년, 히피였던 나는 교회를 가지 않아 부모님께 혼나는 중이었다. 아버지의 고성이 시작되자 덜컥 겁이 났다. 하지만 이대로 순응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건 잘 나가는 중2로서 도리가 아니었다. 그의 훈계가 마무리되고 방에 들어가는 길에, 나의 반항심을 보여드리기 위해 세게 닫았다.


"쾅!"


  아뿔싸, 무슨 지진이 일어난 마냥 너무 세게 문이 닫힌 것이다(그 정도의 파급력 있는 데시벨은 원하지 않았음). 다만 내가 약간 반항하고 있는데 그 정도는 알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닫았을 뿐인데 힘 조절에 실패했다.


“뭐 하는 거야! 불만 있어?!?"


  앞서 말한 심리를 숨겨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온 것이다.


“(방문을 열고 다시 나와서) 내가 닫은 거 아니에요. 갑자기 바람 불어서 세게 닫힌 거예요."


  부모님과 인생 최대 갈등에서 결국 난 nerd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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