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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널드 Jan 14. 2019

아무도 궁금하지 않지만 막상 보면 재밌는 우간다 TMI

우간다 수도 캄팔라 TMI 대방출

1. 전 세계에서 오직 한 사람만 이 문을 통과할 수 있다

괜히 한 번 사이로 지나고 보고 싶게 생김(2019.01.12)

우간다는 민주주의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지만(물론 이것이 성숙한 궤도에 오른 민주주의라고 보기는 어렵다) 아직까지 부간다, 부소가 등 여러 크고 작은 지역에 왕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은 실질적인 통치 권한은 사실상 없다. 그럼에도 토템과 부족에 대한 의식이 굉장히 두터운 우간다 사람들에게 여전히 그 영향력이 미약하다고 보기 어렵다. 이 중 부간다 왕국은 우간다에서 가장 큰 영토를 차지하고 있다. 캄팔라에 대통령 집무실, 국회의사당, 국영방송인 UBC가 위치해 있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부간다 왕이 지내는 거처와 부간다 의회 그리고 부간다 방송국도 있었다. 감투가 많아 다소 혼란스러운 이곳에서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는데 바로 사진 속 이 문이었다. 


흡사 개선문 같은 이 문에는 특별한 원칙이 있다. 오직 부간다 왕만이 저 문 사이를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간다 왕이 아닌 이들은 저 문 중간을 통과할 수 없고 옆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한다. 이 재밌는 포인트에서 나는 즉시 가이드에게 질문 던졌다. "무세베니가 와도 통과 못해?" 무세베니조차도 이 문을 통과할 수는 없단다. 만약 내가 저 문 사이로 가면 어떻게 될까? "You will be urrested."



2. 벌써아침대학교

캄팔라에 있는 마케레레 대학교(Makerere University)는 동아프리카 내에서 손에 꼽히는 명문대이다. 실제로 내가 방문해 본 마케레레 대학교 캠퍼스는 우리나라의 웬만한 대학교 부지보다 훨씬 더 컸고, 여러 다양한 시설이 갖춰진 곳이었다. 캄팔라는 7개의 언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케레레 대학교는 7개의 언덕 중 하나인 마케레레 언덕에 위치해 있다. 

마케레레대학교 캠퍼스(https://www.newvision.co.ug/new_vision/news/1486615/makerere-ranks-5th-africa)

마케레레라는 이름에는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옛날 옛적 한 부간다 왕이 어느 여인과 사랑에 빠져버렸다. 하지만 지위가 지위인지라 함부로 여인과의 사랑을 외부로 공개할 수 없었던 왕은 매일 그녀의 집에서 놀다가 잠이 들기 전 일찍 다시 왕궁으로 돌아오는 일상을 보내야 했다. 그녀를 왕궁으로 들이는 순간 외부의 사람들이 자신의 사랑을 다 알아버릴 테니까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왕이 그녀의 집에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또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몹시 피곤한 일이 있었나 보다) 너무 잘 자버린 나머지 그만 아침에 일어나버린 것이다. 아침에 왕궁이 아닌 그녀의 집에서 눈을 뜬 왕이 했던 첫마디는 "Makerere(Oh, it's already morning)." 당시 망측스러웠던 이 사실을 다른 모든 사람들이 다 알아버리게 되었고, 그녀의 집이 있던 곳의 이름은 마케레레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동아프리카 명문대로 손꼽히는 마케레레대학교는 '벌써아침대학교'쯤 되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3. 우간다에 있는 모스크가 리비아의 대통령 이름을 따게 된 이유

센트럴 모스크 전경(https://globalpressjournal.com/africa/uganda/one-hour-uganda-guided-walk-sites-kampala/)

사실 정확한 이름은 Central mosque이지만 우간다 사람들은 이 모스크를 열에 여덟 가다피 모스크라고 부른다. 가다피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모스크의 규모부터 설명하자면, 아프리카 대륙에서 두 번째로 큰 모스크다(아프리카 1등은 모로코 카사블랑카에 위치한 모스크.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모스크는 당연히 메카). 매우 넓고 웅장하고 내부는 남자 25000명, 여자 15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남성과 여성의 예배당을 분리해놓은 탓에 1층에 남성, 2층에 여성을 수용). 그 외에 카펫이나 샹들리에, 유리, 기둥을 올리는 데 여러 나라의 수입품이 이용되었다. 

모스크 2층. 우간다 사람들이 꽁꽁 싸맨 모습이 색다르게 느껴졌다(2018.01.12)

가다피라는 이름이 붙게 된 이유는 뻔하게도 가다피가 이 모스크를 지었기 때문이다. 서방세계에서 가다피는 아프리카의 독재자로 비치는 것이 사실이다. 나중에 자신을 리비아의 대통령이 아닌 리비아의 왕으로 올리기도 하고, 해외 항공기를 폭파해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 등 독재자적 면모를 보였다(나중에 가다피에 대한 글도 써봐야겠다). 그렇지만 아프리카 내에서 가다피의 위상은 서방세계와는 다르다. 그는 대표적인 아프리카주의자로 아프리카 국가들을 통합하고자 하는 야망이 있었고, 유럽의 식민 지배로 인해 아프리카가 피해를 입었다며 유럽의 책임을 강조했다(리비아는 사실 사하라 이남 국가가 공유하는 역사와 전혀 다른 길을 걸었지만 그는 '흑인 공동체'를 강조했다) 아프리카에서 가다피에 대한 인식이 서구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고 느껴지는 대표적인 부분이 바로 넬슨 만델라와 가다피의 관계에 있다. 만델라는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지도자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가다피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서방에서 가다피와의 관계를 끊으라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만델라는 가다피와 관계를 꾸준히 이어갔다. 만델라 역시 가다피처럼 흑인들의 편에 서서, 서방 세계에 싫은 소리 뱉는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하튼 가다피는 아프리카의 대장이 되기 위해 여러 아프리카 국가에 여러 형식의 원조를 아낌없이 퍼주었다. 우간다에도 그의 원조가 영향을 미쳤는데 그것이 바로 캄팔라 중심부에 위치한 센트럴 모스크인 것이다. 센트럴 모스크에서 사진에 보이는 높은 탑으로 올라가면 캄팔라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참고로 그 기둥을 올라가는 과정이 몹시 불안하다. 나선형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건물 옆 벽에 붙어있을 뿐 어떠한 기둥이 없어 올라가는 내내 혹시나 무너지면 어쩌나 걱정스럽다.

무슬림 복장 잘 어울리는 편. 내 위로 솟은 탑을 올라가면 이 글의 대문사진 풍경을 볼 수 있다(2019.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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