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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널드 Jan 29. 2019

우간다 경찰에 연행된 이야기

코이카 봉사단원이 케냐 스파이로 몰린 이유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처음 경찰서에 끌려갔던 적이 있었다. 부산 동래에 사는 이모할머니 댁 앞에서 사촌 형들과 폭죽을 터뜨리며 불꽃놀이를 했던 탓이다. 다소 도심이었던 이모할머니 댁은 불꽃놀이에 매우 부적절했고 경찰이 출동했다. 폭죽을 들고 마주한 경찰 아저씨는 정말 무서웠다.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경찰서에 내가 다니던 학교와 학년, 반, 이름을 쓰고 나왔다. 그 후로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가 썼던 초등학교 인적사항이 훗날 내 사회 진출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경찰서라는 곳이 그렇다. 경찰을 무시하거나 별거 아니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다가도 막상 내가 경찰서에 들어가게 되면 수갑을 차고 있는 내 모습을 그려낸다. 20년 전 경찰서 연행되던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한데, 하물며 우리나라 경찰도 아닌 우간다 경찰서에 연행될 때 그 기분은 오죽할까.


모든 사건의 발단은 고작 '사진 한 장'이었다. 코이카 단원으로 활동하기 전 각자 임지에 미리 방문해 자신이 살 거주지를 물색하고, 기관과 협의해 업무를 나누고, 간단한 지역 조사를 하는 OJT 기간 동안 벌어진 일이었다. 그중 지역 조사는 관공서 사진 첨부를 수반했다. 그게 우리가 경찰서 사진을 반드시 찍어야 했던 이유다. 


경찰서 사진을 찍는 단원들의 마음가짐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그저 자신의 지역 조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관공서 사진을 잘 찍기 위해 아주 좋아 보이는 카메라(DSLR나 하이엔드)를 챙겼을 것이다. 경찰서가 매우 잘 보이는 구도를 찾아 카메라를 있는 힘껏 들어 올렸을 것이다. 그러고는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충분히 다가서지 않아서다"라는 로버트 카파(Robert Capa)의 정신을 되새겼을 것이다. 그렇게 경찰서 대문을 찍었을 것이다. 그들의 잘못이 굳이 있다면 그들의 사진에 대한 만족의 기준이 지나치게 높아 너무 충분히 다가갔다는 점일 것이다.

종군 사진기자 로버트 카파가 찍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그의 투철한 직업정신은 카파이즘으로 기억되며 저널리즘의 가치를 일깨웠다. 우리 단원들에게까지도(ROBERT CAPA)


우간다 진자(Jinja)의 경찰서를 찍은 L 단원은 그렇게 우간다 경찰서에 처음으로 방문할 기회를 얻어버린 것이다. 갑작스럽게 경찰이 자신을 연행하는데 "What happened!?" "Why?!?"조차 말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진자 경찰서는 다소 격양된 한국말로 가득 채워졌을 것이다. "왜?!" "어디 가는데?!?" 그렇게 L 단원의 거대한 DSLR은 진자 경찰에게 인계되고 40분을 경찰서에 있어야 했다. 관용 여권을 보여주며 volunteer라고 외쳐도 그다지 효력이 없었다. 결국 경찰서를 찍은 사진을 지우고 경찰에게 작은 물 네 병을 건네준 후에 나올 수 있었다. L 단원은 후에 그 40분 동안 머릿속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을 여러 번 끊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L 단원이 경찰서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진자에서 200km 정도 떨어진 음발레(Mbale)에 또 다른 격양된 한국말이 울려 퍼졌을 것이다. 불과 한 시간이 채 안 되는 간격으로 한국인 두 명이 연달아 우간다 경찰서로 연행되는 기이한 사건이 발생했다. Y 단원 역시 카파이즘 정신으로 경찰서에 있는 힘껏 다가가 셔터를 눌렀다. 그에게 네 명의 경찰이 붙어 그를 연행했다. 연행되는 과정에서 Y 단원은 "How much?"를 외치기도 했는데 이것이 그들의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불과 몇 시간 전 한인 분에게 '곤경에 처하거나 돈을 요구하면 순순히 돈을 주라'는 팁을 들음). 

아마 이러고 경찰서 찍다가 잡혀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Y 단원(2019.01)

Y 단원은 경찰서에 연행되자마자 모든 소지품을 다 빼앗겼다. 폰이라도 있어야 사무소에 연락이라도 할 수 있을 텐데 그러지도 못하고 가만히 있어야 했다. 코이카 단원으로서 해야 할 지역 조사를 설명하는 일은 모국어로도 버거운데 외국어로 해야 했으니 잘될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Y 단원의 양팔을 휘감은 문신은 우간다 경찰을 의심의 늪으로 빠뜨렸다. 그가 경찰서에서 하염없이 잡혀있는 동안 유치장에 갇혀있는 이들을 마주하기도 했다. 그들은 대체적으로 속옷이나 바지만 입은 상태에서 머리 뒤로 깍지를 낀 채 오리걸음으로 이동했다. 일곱 평 남짓 되는 공간에 60명 가까이 있었고 그들을 관리하는 경찰은 모두 AK소총을 겨누고 있었다. 그 모습이 곧 자기 모습이 될까 염려했을 Y 단원의 마음이 아직도 안타깝게 느껴진다.


저 경찰에 잡혔어요 저 좀 꺼내 주세요!

경찰들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Y 단원은 재빠르게 자신의 핸드폰으로 사무소에 연락을 취했다. 이 외마디 말을 끝으로 또 핸드폰을 압수당했고 그렇게 네 시간이 지나고서야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물론 자신의 몸만 말이다. 아직도 그의 Sony RX100Mk4 카메라는 음발레 경찰서 어딘가에 있다. 


케냐에서 최근 테러사건이 발생했고 케냐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우간다 역시 경계 태세를 한층 강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 까닭에 경찰서 사진을 찍는 것에도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한 것 같다. 특히 음발레는 차로 3시간이면 케냐로 넘어갈 수 있는, 케냐와 가까운 도시여서 더욱 까다로웠고 Y 단원은 졸지에 케냐 스파이로 몰리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문신까지 했으니 우간다 경찰의 확증편향을 증폭시키기엔 충분했을 것이다. 


이리도 귀한 우간다 경찰서 사진을 운이 좋게도 나는 별문제 없이 찍을 수 있었다(아마 카파이즘 정신으로 경찰서에 충분히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 찍기 어렵다는 문제의 우간다 진자 경찰서(2019.01.25)

한인 두 명은 그 곤혹을 치렀지만 여전히 우간다에 남아 내 옆 방에서 자고 있다. 그렇게 자신들을 힘들게 했던 우간다 경찰마저 껴안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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