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널드 Feb 10. 2019

말을 물가로 데려갈 수조차 없다면

말이 물가로 걸어 갈 힘조차 없다면

17년 2월, 인도를 여행했다. 흔히들 세계 여행의 최고 레벨이라 부를 정도로 여행 고수들만 감당할 수 있다는 인도라는 여행지에 나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겁 없이 떠난 인도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항상 구글 지도를 봐야 했던 탓에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칠 못했는데 혹시나 소매치기를 당할까 봐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실제로 릭샤를 타고 있을 때 밖에 있던 어떤 사람이 내 폰을 가져가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일단 길을 나서면 20m 간격으로 내게 돈을 달라고 쫓아오는 이들이 많았다. 반갑게 인사를 걸어와도 마지막은 돈 요구로 마무리되는 패턴에 지쳐버렸다. 괜히 고수들의 여행지라는 명성(?)이 붙은 게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

감히 나따위를 인도에 비빌 수 없음을 실감. 인도 아그라성(2017.02)
'인도가 저 정도였는데 하물며 우간다는 어떨까.' 

그래서 우간다 엔테베 공항에 내렸을 때, 무척이나 긴장했던 것 같다. 인도의 이러한 상황을 경험해봤던지라 훨씬 더 경직된 채 길을 나섰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도 이틀이 지나도 좀처럼 내게 다가와 구걸하는 이들은 없었다. 길을 가다가 나에게 말을 거는 이들은 인도만큼 많았는데 대부분 정말 친구가 되고 싶어서 혹은 몇 마디 나누고 싶어서였다. 한국 드라마에 대해 아는 체하고 싶은 젊은 우간다 친구들은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박민영의 근황을 묻거나 김우빈의 투병 소식을 궁금해하기도 했다. 내 와츠앱 아이디만으로 그들에게는 첫 번째 코리안 프렌드이자 베스트 프렌드가 될 수 있다. 인도보다 더 할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그런 건지 모르지만 우간다라는 곳은 정말 외국인에게 친절했다. 


며칠이 지나서야 구걸하는 아이들을 처음 마주했다. 주로 우버에 타고 있을 때 창 밖에서 구걸을 했고, 이따금씩 길가에서 배가 고프다며 돈을 달라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마음이 예전 같지 않았다. 이들을 보는 마음이 인도에 있을 때보다 더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내 인격의 성장이라기 보단 해외봉사단원이라는 자리가 주는 수동적인 감정이겠지만 그래도 마음이 무거운 건 사실이었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그래도 뭐라도 줘야 하는가, 아니면 냉랭하게 발길을 돌려야 하는가. 사회복지를 전공한 이들을 아주 손쉽게 곤란한 상황으로 내몰 수 있는 질문이기도 한데, 이 질문이 나에게 무게감 있게 떨어졌다. 대부분은 돈을 줘선 안 된다고들 말한다.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결론적으로 자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두 푼 주는 돈으로 하루를 버틸 순 있겠지만, 다음날도 착한 외국인이 길거리를 지나가 주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다소 자유로운 편인 우간다 사람들(2018.12)

실제로 아프리카는 전 세계의 원조가 쏟아지는 곳이지만 30년 전과 비교했을 때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고 볼 순 없다. 세계 각지의 지원금이 하루살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될 뿐 스스로 일어서기 위한 계획으로 사용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프리카에서 생존을 위한 필수품 중 하나인 모기장을 예로 들면 모기장은 전 세계에서 원조품으로 아프리카에 쏟아진다. 모기장은 생산하기 어렵지 않지만 생존에 꼭 필요한 만큼, 아프리카에서 직접 생산에 착수할 만하다. 모기장 생산을 기반으로 조금씩 고차원적인 산업에 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 아프리카 국가는 모기장 생산에 별 관심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해외 원조로 받기 때문'이다.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파견될 지역을 조사를 하면서 동료 단원의 조사 내용을 보던 중 'grants'라는 단어가 보였다. 지역의 주요 수입원란에 적힌 'grants'라는 생소했다. 현지 기관 직원이 적은 것이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양여금, 한마디로 보조금 같은 개념이었다. 지역의 주요 수입원이라 함은 관광, 농업, 유통업 등 따위가 적혀야 한다는 나의 상식선에서 받아들이기 다소 당황스러웠다. 보조금을 지역의 수입으로 여기는, 이들의 인식을 엿볼 수 있었다. 


말에게 물을 떠다 주기 보단, 물을 먹을 강가로 가는 법을 가르치라는 클래식 속담이 응당 맞는 말처럼 보이지만, 아프리카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곧 죽을 것 같은 말에겐 강으로 걸어갈 힘조차 없기 때문이다. 하루 1.25달러 이하로 생계를 꾸리는 이들을 절대적 빈곤이라고 칭한다. 하루 1.25달러를 연간 소득으로 환산하면 456.25달러인데, 우간다의 1인당 연간 소득은 580달러다(DailyMonitor 2019년 1월 21일 기사. 네이버에서 GDP를 검색하면 623달러라고 나오지만 우간다 신문의 자료를 인용). 절대적 빈곤에서 간신히 벗어난 수준인데, 오늘 먹으면 내일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이들에게 강가로 가는 법을 배울 생각이 없다고 다그치자니 내 마음이 편하지 않다. 

사정이 그나마 나은 캄팔라의 어느 가정 환경(2019.01)

이들에게는 강가로 가는 법도 알려줘야 하지만, 당장 물도 떠다 줘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일하는 이들은 아직까지도 이 딜레마에서 치열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실제로 1000실링(우리나라 돈 약 300원)이면 이곳에서 나는 감자나 양파, 토마토, 아보카도 1kg을 살 수 있는 돈이다. 무작정 발길을 돌리기 어려운 이유다. 

작가의 이전글 우간다 경찰에 연행된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