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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널드 Feb 12. 2019

우간다 쓰앵님들은 어떤 교육을 이상적이라고 생각할까

점수, 평균, 등수. 숫자들의 향연

수능국어듣기평가와 영어듣기평가 시간엔 비행기조차 날지 않는, 스카이캐슬의 본고장 대한민국이 전 세계에 자신 있게 내밀 수 있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교육열이다. 오바마 전 미 대통령도 한국의 교육열을 본받아야 한다고 공식석상에서 말했을 정도, 전 세계 올림피아드에서 한국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 것이 섭섭할 정도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교육열을 이야기해봤자 콧방귀를 뀔 확률이 높지만, 이곳 우간다 역시 줄세우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이전 글에서도 잠깐 언급한 적이 있는데, 연초가 되면 우간다 전국적으로 학교 줄세우기에 신문 네다섯 면을 할애한다. 각 학교별로 학생들의 점수 합계 평균 몇 점인지, 평균이 높은 학교를 순서대로 정리하고, 점수를 잘 받은 학생들 개인 사진을 줄줄이 기사에 실는다. 사실 신문으로만 접했을 땐 우간다의 교육열을 제대로 체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 내가 1년 동안 일할 기관인 Jinja PMM Girls' School에 첫 출근하면서 이곳의 열기를 곧바로 느낄 수 있었다.

정성 들인 서열화에 눈이 멀 지경(2019.01 NewVision)

나는 동료교사들과 인사할 새도 없이 일단 시험감독부터 들어갔다. 부모님을 통해서나 들었던 월초고사, 주초고사 등과 같은 시험을 학기가 시작하자마자 진행하고 있었다. 내 인생 첫 시험 감독 경험이 아프리카 우간다 학생의 수학 시험이라는 점이 새삼 설레서 좋았지만, 지난주부터 줄곧 시험을 치고 있는 학생들을 보니 안쓰럽기도 했다. 

내가 걷은 시험지. 시험 종료가 다다르자 학생들이 갑자기 주섬주섬 흰 실을 꺼내 시험지와 답안지를 펜으로 뚫고 그 실로 묶었다(2019.02.11)

시험 감독을 두 번 들어가니 부장급 회의가 있었고 그곳 역시 참석했다. 그리고 비로소 우간다 쓰앵님들의 속내를 엿볼 수 있었다. 액셀 시트로 정리된 종이 한 장을 각 과목 부장들이 하나씩 받아 들더니, 심각한 회의를 시작했다. 애초에 시험 성적이 좋지 못하다고 전제를 깐 상태에서 무엇이 원인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각 과목별로 의견을 듣기 시작했다. 분위기는 살벌했다. 교사에 대한 인센티브가 없다는 점, 교장과 이사 중 리더가 누군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점, 교사 한 명이 커버하는 수업 시수가 너무 많다는 점, 교재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점, 실습하기 어렵다는 점 등 여러 과목에서 여러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 학교는 사정이 좋은 편임에도 여전히 이러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다. 

문제의 시트. 2018년  지표가 급격히 나빠지긴 했다. 위쪽에 있는 표는 올해 시험의 세부 성적. 하단에 위치한 표는 2010년부터 올해까지 성적 개괄(2019.02.11)
PMM 내부. 이 예쁜 정원을 지나 교무회의실로 들어가면 사뭇 다른 분위기가 연출된다(2019.01)

하지만 무엇보다 신기했던 것은, 이러한 줄세우기에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조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학교의 평균이 급격히 떨어졌으니, 학생들을 잡아둬서라도 숙제를 하게 해야 한다거나, 교사가 끝까지 학생을 붙잡고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현 교육 제도에 과잉동조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줄세우기라는 본질을 건드리는 (순진한)목소리는 없었다. 심지어 이 회의에서 줄세우기에 포함되지 않은 과목 교사는 체육을 담당하는 나뿐이었다. 그곳에서 가장 순진한 사람은 나였다. 


숫자로 점철되는 이곳의 교육에 한숨 쉬고 있을 때, 문득 우리나라 교육을 떠올렸다. 이제 노골적으로 성적을 공개하고, 신문에 학교 평균 순으로 순위를 실는 일은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그 서열화는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대부분 사회 구성원의 마음속에 내재화되어 있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것이 우리 사회다. 


'등단의 기준은 어디까지인가, 어느 대학의 어느 과정을 마치면 명문대생이라 볼 수 있나'라는 질문을 공론장에서 진지하게 던지고 사회적 합의를 시도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모두가 안다. '사람을 간판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라는 정답이 이미 있다. 그러나 그 정답을 따르는 이는 많지 않다. ~(중략)~ 요즘 젊은이들은 한국 사회에 시험을 통해 획득하는 간판이 존재하며 그 간판이 곧 신분이 되고, 그로 인해 계급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아주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듯하다. 
- 장강명 <당선, 합격, 계급>


쓰앵님들이 이 사실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평가방식(서열화)이 바뀌지 않는 한 이러한 방향성은 결코 변화하지 못할 것이다. 수능을 등급제니 표준점수제니, 절대평가를 몇 과목으로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만으로는 교육이 낳은 왜곡된 계급을 해체시키지 못한다는 걸 우린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교육은 인간을 긍정적인  방향에 맞춰 변화시키는 행위다. "타인보다 우수한 것이 고결함이 아니라, 과거의 자신보다 우수한 것이야 말로 진정한 고결함이다"는 헤밍웨이의 클래식 워딩이 그래도 교육에서만큼은 줄세우기보다 우세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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