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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널드 Mar 03. 2019

아프리카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는가

현지인이 건넨 편지 한 통에서 본 인간의 교화 가능성 

우간다에서 이곳 현지인에게 편지 한 통을 받았다. 그는 정성스레 쓴 편지를 내 손에 꼭 쥐어주며 꼭 읽어달라고 말했다. 그 정성이 갸륵하기도 하고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편지로까지 적은 걸까 궁금했다. 편지의 내용은 대략 이랬다.

내가 학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50000실링(우리나라 돈 약 16000원)을 지원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연락이 잘 될 수 있도록 스마트폰을 사줄 것을 요청드립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정성스러운 무례함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더 헷갈린다.

다소 뻔뻔하고 황당한 요구는 이들에게 동정심이라는 이름으로 정당성을 얻는다. 부탁을 하는 사람이 당당하고 부탁을 받는 사람은 정작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는 이 뒤바뀐 역할극은 이곳에서 비일비재하다. 자신에게 장학금을 달라고 이야기하거나, 학업을 이어가도록 돈을 달라는 요청, 스마트폰을 사달라는 요청, 카메라를 달라는 요청 등 우리가 생각하는 'Can I ask you a favor'에서 'favor'의 범주와는 완전히 다르다. 


소위 말하는 구걸. 이 구걸하는 태도에 좋은 뜻을 지니고 온 많은 외국인들은 이곳에 정을 잃곤 한다. 이러한 태도가 바뀌지 않아 몇십 년이 지나도 아프리카가 다른 대륙과는 다르게 발전이 없다고도 한다. 정부는 원조에 기대고, 개인은 외국인에게 기대려고 한다. 자력으로 뭔가를 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을 때, 이곳에 변화를 기대했던 이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끝내 모든 문제는 아프리칸의 바뀌지 않는 천성이 초래한 것이 된다.



바뀌지 않는 천성,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서 많이 회자되는 문장과 언뜻 겹쳐 보인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는 문장 말이다. 이 문장은 상대방이 저지른 잘못으로부터 상처 받거나 손해를 입지 않기 위한 방어 기제로 제법 설득력 있게 퍼지고 있는 모양새다. 잘못을 저지른 이를 교화시키기 위한 지리멸렬한 과정, 그리고 그 과정이 성공으로 이어질지도 불투명한데, 사람을 고쳐 쓰겠다고 하는 건 분명 낭비처럼 보이긴 한다. 하지만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는 말만큼 자기기만적인 말도 찾아보기 힘들다. 


인간의 교화 가능성을 0으로 수렴시키는 이 말은, 자신은 교화의 대상이 아님을 내포하고 있다. 내가 고쳐봤는데 안 되더라, 나는 누구를 고치는 대상이지 내가 고쳐질 대상은 아니다는 의미다. 자신은 애초에 개조의 대상은 아니고, 개조되어야 할 사람은 상대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이 문장을 내뱉는 순간 자연스럽게 자신을 흠결 없는 사람으로 위치시키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 명제를 신념으로 삼고 있는 이들에게는 서머싯 몸이 <달과 6펜스>에 쓴 한 문구를 소개해주고 싶다. 

그때만 해도 나는 인간의 천성이 얼마나 모순투성이인지를 몰랐다. 성실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가식이 있으며 고결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비열함이 있고 불량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선량함이 있는지 몰랐다.



우리는 말도 안 되게 부끄러운 과거를 지니고 살아간다. 내 과거는, 차일 이불이 한 트럭이어도 모자랄 정도라서 그런가. 자기 방어를 위해서라도 인간의 교화 가능성을 믿고 싶다. 그리고 나는 인간의 교화 가능성을 쉽게 증명할 수 있다. '이불킥'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말이다. 당신이 한 번이라도 이불킥을 해봤다면, 당신은 고쳐 쓰인 경험이 있는 것이다. 


나는 이곳의 변화를 위해 왔다. 교화라는 거창한 말은 아니더라도, 이들의 변화를 기대하고, 이들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프리칸 천성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는 의식이 내 뇌를 지배한다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진다. 그래서 나는 이곳 일부 현지인들이 지니고 있는 '당당한 구걸 태도'가, 훗날 이들의 이불킥 소재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스마트폰은 사줄 수 없다. 하지만 네가 스스로 학비를 벌어 학교에 등록한다면, 네가 낸 학비만큼은 내가 줄 의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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