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간다 로컬 마켓에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까지 세 달이 걸렸다
별 것 아닌 일에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버스에서 내릴 때 하차 벨을 누르는 일에 왜 심장이 순간 두근대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택시 기사님보다 내가 더 젊고 내가 더 덩치도 큰데 이상하게 택시 앞자리에 타는 일에 의식적인 용기가 필요한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전화로 배달 음식 주문할 때 왜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까지 약간의 긴장감을 억누르며 연습을 해보는지 잘 모르겠다. 일상에서 매일 겪는 일인데도 이상하게 나에게는 쉽지 않았던 것들이다.
우간다에 처음 발을 디뎌서 로컬 마켓에 가는 일은 오죽했을까. 사실 처음엔 외국인들이 많이 보이는 뻔한 곳만 다녔다. 그 당시에도 내 내면의 인종차별적인 요소라는 걸 알았지만, 피부색이 까맣지 않은 사람을 볼 때 왠지 모르게 안정감을 느꼈다. 말로는 그렇지 않으려고 애를 써도 현지인들이 꽉 들어차 있는 공간에 내 몸을 던지려면 심호흡이 필요했다. 그런 곳에서는 앞꿈치가 먼저 지면에 닿게 걸어 다녔다. 우간다에 온 지 꼭 세 달이 된 오늘이 되어서야, 발뒤꿈치가 지면에 먼저 닿음을 느꼈다.
걸음과 걸음 사이에도 용기가 필요한 때가 지났고, 사람들에게 인사도 건넬 여유를 지닌 척도 할 수 있게 됐다. 그제야 카메라를 꺼낼 수 있었다. 사실 이곳 로컬 마켓에 처음 왔을 때 식자재들이 다 커서 놀라웠다. 사진을 너무 찍고 싶었는데, 사진을 찍을 용기가 없어 선뜻 카메라를 꺼내지 못했다. 혹여나 사는 걸로 오해할까 봐.
여전히 가격을 물어보거나 카메라를 꺼낼 땐 두근거림을 주체할 수가 없다. 하긴, 30년 가까이 버스 하차벨도 두근거리면서 눌렀는데, 우간다 시장이 석 달만에 내 집처럼 편안해지길 바라는 게 말이 안 되긴 하다. 이곳에서도 별 것 아닌 일에 여전히 나는 용기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이것들이 내 자그마한 용기의 결과물이다.
1. '크고 아름다운' 아보카도와 망고 사진 찍어보기
남다른 사이즈를 자랑하는 대표적인 예가 아보카도와 망고다. 기본적인 사이즈가 내 주먹 두배에서 럭비공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나는 감히 로컬 마켓에서 이것을 들고 사진을 찍는 엄청난 용기를 발휘했다. 심지어 망고는 사지도 않았으면서 사진만 찍었다.
2. 시금치 300원에 사기
보통 이곳에서는 클래식이스더베스트 저울을 이용해 무게 기준으로 손님들에게 판다. 시장을 탐색하던 중 잘 보이지 않던 시금치가 눈에 띄었다. 시금치는 부피가 큰데 가벼워서 500g만 사가도 잔치 수준의 규모가 되어 버린다. 나는 과감하게 1000실링(약 300원) 어치를 달라고 말했다. 사진 찍는 용기는 덤.
3. 좋은 바나나 나올 때까지 애간장 태우기
이곳 바나나는 종류도 많고 파는 곳도 많아서 바나나 코너에 발을 들이는 순간, 파는 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다. 내가 먹는 바나나는 '보고야'로 크기도 클 뿐만 아니라 달기까지 하다. 주로 우유 200ml + 물 200ml + 보고야 2개를 갈아먹는데 최고의 가성비와 맛을 자랑하는 보고야 스무디가 된다. 이 스무디를 워낙 자주 마시다 보니 보고야를 사러 갈 일이 많은데, 나는 감히 서로 다른 상점들을 오가며 상인들의 애간장을 태우는, 인간으로서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을 해낸다.
4. 다른 곳에서 산 파인애플을 단골 가게 가서 잘라달라고 부탁하기
아무리 가게 주인과 신뢰 관계를 쌓았어도, 술집에서 편의점 맥주를 사 와 '먹어도 되냐'라고 물어보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어려우니까 말이다. 한국에서도 해본 적 없는 질문을 이곳에서 해냈다. 보통 파인애플을 사면 껍질을 까고 손질을 해서 주는데, 이날 내가 산 파인애플 가게는 손질을 해줄 수가 없다며 파인애플만 덜렁 주었다. 그곳을 떠나 내 단골가게로 가서 파인애플을 잘라달라고 말하기까지 심호흡 한 번밖에 필요하지 않았다. 참고로 이곳 파인애플은 크기에 따라 1000실링~3000실링(300원 ~ 1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