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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널드 Jan 12. 2019

아프리카에 없는 것 -  
역사 인식의 헤게모니

아프리카는 아직도 자신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우간다에서 유독 많이 보이는 이름, John Hanning Speke


아프리카가 글을 지니지 못했다는 이유로, 식민 국가였다는 이유로, 아프리카의 역사는 본인의 역사가 아니다. 우리가 그나마 아는 몹시 단편적인 역사는 주체적인 아프리카의 역사가 아닌, 객체로서 인식되거나 발견된 것들이다. 아프리카가 실질적으로 역사를 이해하는 관점에 대한 헤게모니를 쥐고 있지 못한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시가 바로 존 해닝 스피크(John Hanning Speke)다.

https://www.the-tls.co.uk/articles/public/john-speke-the-greatest-victorian-explorer-william-boyd/

스피크는 1858년 처음으로 (후에 알려진) 빅토리아 호수에 당도해 그 이름을 붙였고, 이후 영국으로 돌아와 그곳이 나일강이 시작하는 곳(Source of Nile)이라고 처음으로 밝힌 이로 알려져 있다. 1800년대 중반 아프리카를 '세계에 알린' 공을 전 세계가 기억하는 것이다. 덕분에 우간다 곳곳에는 그의 이름을 딴 장소가 있다. 아마 나일강의 발원지가 우간다의 진자 지역(*내가 파견될 임지이기도 함)이기 때문일 것이다. Speke Hotel은 캄팔라 나카세로에 위치한 매우 큰 호텔 중 하나며, 심지어 그의 이름을 딴 Speke road가 캄팔라 중심부를 가로지르고 있다. 

나일강의 발원지는 우간다 진자, 에티오피아 고원지대다.(https://ko.wikipedia.org/wiki/%EB%82%98%EC%9D%BC%EA%B0%95)

하지만 당연하게도 빅토리아 호수는 스피크에 의해 처음 발견된 것이 아니다. 마치 아메리카 대륙이 콜럼버스에 의해 처음 발견된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아메리카 대륙에 이미 살고 있던 원주민이 있었고, 마찬가지로 빅토리아 호수를 수만 년 전부터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던 이들이 있었다. Lake Victoria이기 이전에 이미 Nalubaale(우간다에서는 이 이름. 이외에 Nam Lolwe, Nyanza 등의 이름을 지니고 있음)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고유의 이름은 사라지고 빅토리아 여왕에 대한 찬양만 남은 이 명칭은 세계로 수출되었다. 스피크의 탐험에 대한 열정과 왕실에 대한 충성심이 갸륵했던 나머지, 150년이 지난 지금도 캄팔라 곳곳에는 그의 이름이 녹아 있다.  


우간다 이야기는 아니지만 스피크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야 비로소 내가 느끼는 불편한 감정을 조금은 공유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스피크는 관점에 따라 우간다 바로 밑에 위치한 조그마한 나라 르완다가 겪은 비극의 시작점이 되는 인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916년 국제연맹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벨기에가 르완다를 통치하도록 결정했다. 르완다를 지배했던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했기 때문에 승전국인 벨기에가 그 일부를 받은 것이다. 르완다는 몇 개의 부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장 큰 부족이 후투족이고 그다음이 투치족이다. 벨기에는 효율적으로 르완다를 통치하기 위해 비교적 소수민족인 투치족을 식민 통치의 앞잡이로 이용했다. 원래 후투족과 투치족은 별 문제없는 사이였지만 하루아침에 후투족은 피지배 계급으로 전락해버린 셈이다. 후투족에게 투치족은 벨기에와 같은 침략자와 다를 바 없어졌다. 벨기에로부터 독립한 르완다는 종족의 인구 비례에 따라 공무원, 직업군인, 대학 입학의 정원을 정했는데 자연스레 후투족이 실권을 잡게 되었고, 갈등이 폭발했다. 1994년 르완다 인구의 20%인 80만 명이 학살당하는 끔찍한 사태가 발생하고 만다.(*다른 이야기지만 동남아시아의 미얀마 내 로힝야 족에 대한 탄압과 매우 결이 비슷하다. 서구 열강의 식민지배 통치가 얼마나 문화적 이해 없이 이루어졌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벨기에가 후투족과 투치족을 차별한 결정적인 이유는 너무나 어처구니없게도 '외모'였다. 투치족은 후투족에 비해 키가 크고 콧대가 높으며 아프리카에서도 서구적인 외모를 지닌 종족이었는데, 이러한 외모를 기준으로 서구 열강들은 그들을 우대한 것이다. 자신들의 먼 친척이라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외모를 구분하는 기준을 세운 이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벨기에 통치 전 그곳을 방문했던 존 해닝 스피크였다.


간접적이지만 르완다 제노사이드의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그는 우간다에서 여전히 '첫 번째'라는 이유로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다(그 첫 번째라는 말마저도 얼마나 서구 중심적인가). 심지어 무세베니 현 우간다 대통령이 투치족 출신임에도 말이다. 무중구(피부가 하얀 사람) 관광객에게 관광 가이드는 존 해닝 스피크를 반드시 설명하고, 그의 이름을 딴 많은 것을 열거한다. 그의 이름이 끊이지 않고 나타날 때마다 나는 썩 달갑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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