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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널드 Dec 14. 2018

널드 감성으로 우간다 사랑하기

봉사단원으로 처음 발을 디딘 우간다

자물쇠는 두세 개 마련해서 문단속하세요
가방은 무조건 앞으로, 에코백은 위험해요
저녁 7시 이후에는 절대로 나가시면 안 돼요



우간다 도둑, 강도, 소매치기 등 크고 작은 범죄 행위를 엔테베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다시 한번 들었다. 이러한 부정적인 사건들은 한 번 뇌리에 박혀 당최 빠져나가질 않는다. 문제는 이러한 부정적인 정보가 우간다를 인식하고 바라보는 틀을 조금씩 왜곡시키는 독소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낯선 우간다의 시장 풍경은 지나가던 외지인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꽉 쥐게 할 만큼 경계심을 자아내기 충분하다(2018.12.13)

해외봉사단원의 경험이 있는 이의 대부분은 낯선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서 혹은 그곳에서 최소한의 피해를 입기 위해 극단적인(낯선 환경의 부정적인 정보 값에 유달리 큰 의미를 두는) 정보 수용 방식을 택한다. 다소 과민한 이들의 반응은 활동수기나 보고서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현지인들은 힘든 일을 회피해버리는 경향이 있음', '배우지 못한 사람들' 등으로 상정하는 표현이 줄곧 보일 때마다 불편했다. 다들 이미 알고 있듯이, 사회는 대다수의 좋은 사람과 극소수의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극소수의 그렇지 못한 사람도 좋은 사람이 될 교육의 기회를 제대로 제공받지 못했다고 말하고 싶다). 현지인과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좌절의 책임이 현지인에게만 전가되는 심리 변화를 전임 봉사단원의 글에서 종종 느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부정적인 정보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사고는 사실 인간에게는 매우 필요한 능력이다. 아닌 것을 맞다고 판정하거나 없는데 있다고 판정하는 긍정오류와, 맞는 걸 아니라고 판정하거나 있는데 없다고 판정하는 부정오류 중 생존에 치명적인 실수는 언제나 부정오류기 때문이다. 뱀이 없지만 "저기 뱀이 있어요"라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실수보다 뱀이 있는데도 "여긴 뱀이 없어요"라고 알리는 실수는 생존을 훨씬 위협한다. 긍정오류를 통해 살아남을 확률이 높은 조상들로부터 태어난 인간이니 긍정오류를 지향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셈이다. 긍정오류는 해도 괜찮은 것으로 인식되면서, 같은 상황에서도 부정적인 정보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사고는 효율적인 자기 방어 수단으로 인정받게 됐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부정적인 정보 값에 집중하다 보니 오히려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태도가 순진한 것으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좋은 사람들을 만난 기억은 버려진 채, 한 번의 안 좋은 경험과 기억으로 자신을 긴장시키고 내적으로 무장시키는 것이 과연 봉사단원으로서 옳은 것인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내 주위에 경계를 세우는 행위는 내 피해를 최소화하고 심적 상처를 덜 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로 인해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것을 보고, 좋은 경험을 쌓는 과정은 위축되거나 큰 의미를 얻지 못하고 만다. 낯선 환경을 오롯이 이해하는 데에 더 좋은 태도가 정녕 자기 방어에 천착하는 것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오늘 나의 우간다는 '친절'이란 단어로 정리되는 곳이었다. 엔테베 공항에 일면식도 없는 봉사단원을 마중 나온 우간다 친구들, 아직 다리가 불편한 나를 위해 짐을 대신 옮겨준 기사, 멀티탭이 안 될까 봐 자신이 직접 테스트해보고 판매를 권한 직원, 환전소에서 우간다 실링을 건네주며 함박 미소를 보인 아저씨, 문 열고 닫는 법을 친절히 설명해준 가드는 모두 친절한 이들이었다.

캄팔라 시내에 위치한 환전소 간판. 이토록 내 마음에 드는 환대 간판을 또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2018.12.13)


앞으로 나의 우간다 생활은 순진하게 당하거나 바보처럼 현지인들에게 피해를 입는 그런 사례들로 채워질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끊임없이 낯선 환경과 낯선 이들을 위한, 그러니까 우간다와 우간다 사람들을 위한 변명을 이어가고자 한다. 우간다에서 차별적인 언사, 조롱, 부담스러운 시선을 그대로 받으면서도 이러한 일부 부정적인 경험에 큰 의미를 두고 싶지 않다. 나는 진심으로 이곳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조금 더 욕심을 부린다면, 나의 순진한 인식이 결코 순진한 것이 아님을, 사실은 한 대상을 오롯이 이해하는 태도임을 설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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