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선생님도 좋아해 주는 우간다 소녀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사범대에 진학했지만 교사가 되기 위해 진학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은 대체적으로 충동적으로 이행됐는데, 대학 진학 역시 그랬습니다. '멋있어 보여서' 진학한 것이죠. 그래서 그런 걸까요? 애초에 교사의 꿈이 없더라도 주위에서 교사가 되고 교생 실습도 나가고 그렇게 그 바닥에 있다 보면 교사의 꿈에 자신을 맞출 법도 한데, 저는 이상하게 그게 되지 않았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가르치는 행위 자체를 정말 못하기 때문입니다. 군대에서 동기에게 기타 치는 법을 알려줄 때도, 과외 학생에게 문제를 풀어줄 때도, 심지어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알려줄 때도, 두세 번 씩 가르쳐줘야 하는 상황에 부딪치면 답답함이 터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저와 친한 사람들은 종종 "답답해하지 말고 알려줘"라는 말을 합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드는데, 이것만큼은 고친다는 게 참 쉽지가 않습니다.
교육이라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교육자에게 인내를 요구합니다. 피교육자가 교육을 받고 숙달이 되기 위해서라면 길든 짧든 시간이 걸리기 마련인데, 저는 그 과정을 잘 못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그 말이 딱 들어맞는 사람입니다. 지금의 제 자신은 제가 거친 다른 선생님들의 인내로 구성되어 있건만, 정작 저는 다른 이를 위해 잠깐조차도 참아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제가 이 땅의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왔으니, 저는 이곳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사실 미안한 마음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이곳 학생들은 그야말로 천진난만입니다. 모든 세상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하죠.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합니다. 특히 경쟁 스포츠를 할 때, 한국 학생들과 확연히 차이를 보입니다. 자기들끼리 실랑이가 붙으면 최소 1분은 가만히 내버려둬야 합니다. 피구를 하다가 상대 팀 한 명을 맞추기라도 하면 공이 상대 진영으로 굴러가고 있어도 세리머니를 반드시 해야 합니다.
승패가 갈리는 스포츠에서 이들은 절대 패자가 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제가 여태 가르쳐봤던 학생들의 경우 이기고 싶은 욕구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자신의 팀을 배반하고 내집단 의식을 버리면서까지 이기고 싶어 하진 않습니다. 이곳 학생들은 만약 자신의 팀이 졌다면, 은근슬쩍 이긴 팀으로 자리를 옮겨 같이 이긴 척을 합니다. 한두 명이 아니라 많은 학생들이 그렇게 합니다. 지고 있는 상황에서 경기가 과열되면 심판 판정에 절대 승복하지 않습니다.
보통 우리나라에서는 학생들이 떠들고 있으면 가만히 지켜보다가 좀 잠잠해진다 싶을 때, "너네 할 이야기 다 끝났니?"라고 말하면 이내 수업 분위기에 긴장감이 감돕니다. 하지만 이곳에선 똑같은 상황임에도 "Have you finished your chat?"이라고 말하면 정말 다 끝났다는 뜻으로 당당하게 "Yes sir"이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결국 답답함에 화가 터집니다.
지난주 금요일에 제 동료 단원 중 한 명이 제 수업을 참관했습니다. 저는 평소처럼 소리를 지르고 주의를 주느라 정신없는 80분을 보냈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동료 단원이 와서 저에게 웃으며 그러더군요. "선생님. 하루 종일 화만 내시던데요?" 저도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웃었습니다. "그러게요. 하다 보면 자꾸 화가 쌓이네요."
그렇게 대화하며 뒤를 돌아보니, 시키지도 않았는데 학생들이 콘을 정리하고, 팀 조끼를 개고, 공을 체육 창고로 가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제게 배운 배꼽 인사로 "선생님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까르르 웃습니다.
저는 화만 내는데 학생들은 저를 좋아합니다. 이런 제가 이 땅의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왔으니, 저는 이곳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사실 미안한 마음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