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널드 Mar 17. 2019

우간다 소녀들의 요가 정복기2

팔자에도 없는 가정통신문 쓰기

"토요일 네시 반에 못 올 것 같은 이유가 뭐야?"
"저희 부모님이 제가 집에 늦게 들어오는 걸 허락하지 않으실 거예요."
"다섯 시 반이면 끝나는데?"
"네"


이것이 제가 나쟈와 우바의 부모님께 편지를 쓴 이유입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밤 열 시 열한 시까지 학원을 다녀오는 게 당연한데, 이곳엔 여섯 시에 통금 아닌 통금이 있고 심지어 그런 부모님이 적지 않아서 조금 놀랐습니다. 나쟈와 우바는 정규 수업이라고 거짓말해달라는 부탁을 할 정도로 어떻게든 요가 클럽에 오고 싶다며 전의를 불태웠습니다. 나름 지원서 접수와 면접의 과정을 거쳐 선발된 학생을 저 또한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쟈와 우바가 밤마실(해가 쨍쨍하지만 그래도)의 재미를 깨우치길 바랐습니다. 저도 초등학교 때 밤 열 시에 태권도 끝나고 노는 게 가장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팔자에도 없는 가정통신문 편지를 쓰게 됐습니다. 제 서명과 명함까지 끼워서 말이죠.

스타워즈 대사(May the force be with you)로 마무리해버리는 가정통신문. Igambi는 제 루소가 이름입니다.

나쟈와 우바가 편지 내용에 써달라고 반드시 부탁한 게 있었는데 바로 두 명의 이름을 꼭 편지에 다 넣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연대를 형성하기 위한 두 소녀의 부탁이 귀여워 적극 반영했습니다. 다음날 나쟈와 우바는 허락을 받았다며 기뻐했습니다. 제 가정통신문이 효력이 있었다는 사실에 저 역시 기뻤습니다. 


이렇게 돌고 돌아 두 번째 세션을 진행했습니다. 서로 "안녕하세요"라고 배꼽인사를 하면서 출석을 확인했습니다. 이미 운동장에는 요가 클럽 멤버가 아닌 학생들이 구경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19명의 전사들이 오와 열을 맞춰 호흡을 시작했습니다. 지난번에도 쓴 적이 있지만 다리를 벌리거나 엉덩이가 돋보이는 동작에 아이돌 팬덤 급의 환호가 터집니다. 그러니 제가 캣 카우 동작을 할 때 신경이 쓰일 수밖에요. 

캣 카우 동작. 이곳에서 관심받고 싶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캣 카우 동작을 하면 된다(출처: Popsugar fitness)

이 날은 전사 자세와 역전사 자세를 중점적으로 했습니다. 허벅지가 타들어가는 걸 즐기라고 제가 말할 때마다 야유가 터져 나오지만 그래도 학생들은 입술을 꽉 깨물고 버티려고 애씁니다. 솔직히 요가 클럽 학생들이 가장 잘하는 것은 아쉽게도 요가 동작이 아니라 한국어 인사입니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는 어찌나 또박또박 잘 말하는지 모릅니다. 

사진으로 다시 보니 학생들의 눈빛이 정말 진지하네요
다소 불편하게 기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상 진지한 소녀들

아직까진 서로를 쳐다보면 웃음이 터져 나오는 요가를 하고 있지만, 곧 웃음기 싹 빠진 요가 클럽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어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간다 소녀들의 요가 정복기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