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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널드 Mar 07. 2019

우간다 소녀들의 요가 정복기1

합장 자세만큼은 누구보다도 프로

드디어 지원서 접수부터 면접에 이르는 지난한 과정을 끝으로 최종 요가클럽 인원을 선발하고, 오늘 첫 요가 클래스를 진행했습니다. 최종 공지에 제가 'Be punctual'을 그토록 강조했건만, 예정된 시간보다 5분이 지나고서야 요가 클래스 학생들이 슬슬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사실 저는 이상하게도 이들이 약속 시간에 늦는 게 그렇게 화가 나지 않습니다. 소위 '아프리칸 타임'으로 불리는 이들의 지각 본능이 저와 닮았기 때문일까요? 제가 운동장에서 혼자 멀뚱멀뚱 기다리고 있는 게 그렇게 불편하지도 않습니다. 물론 면접 시간에 학생들이 늦을 땐 좀 초조했지만, 인터뷰를 진행한 계기로 저도 내성이 생겼나 봅니다. 


하나둘씩 제 앞으로 학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제가 '자 이제 그럼 저쪽으로 이동할까?'라고 말하는데 몇몇 학생들이 제게 가봐야 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무슨 소리야, 너네들이 그토록 들어오고 싶어 하던 요가 클래스가 드디어 그 막을 올리는데 갑자기 어딜 가. 아직도 내게 요가 클래스 꼭 듣고 싶다고 학생들이 쫓아오는데?'

벌주는 거 아닙니다

사정은 이랬습니다. 학교 측에서 오후 4시 40분 정규 수업이 끝나고 추가로 수업을 5시 40분까지 편성한 겁니다. 사실 요가 클럽을 만들겠다고 교장과 코워커에게 미리 다 이야기를 했고, 허가받은 시간이 수요일 오후 4시 50분이었거든요. 고민스럽긴 했는데, 정말 이상하게도 화가 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오늘은 오리엔테이션 주간이라 수요일 추가 수업은 없지만 다음 주 수요일부터는 안될 것 같다고 학생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했습니다. 시간을 제발 바꿔달라는 간절한 눈빛이 귀여웠습니다. 한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심기가 불편했겠는데, 저 사랑스러운 눈빛 때문에 감정적 동요가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미리 준비한 아이패드 출석부로 출석을 확인한 후, 수업으로 먼저 가야 하는 아이들을 보냈습니다. 다섯 시쯤 되니, 1명을 제외한 요가 클래스 학생이 다 모였고, 저는 운동장에 그늘진 평지로 자리로 옮겼습니다. 



"요가 클래스 시작하기 전에, 추가로 생긴 수업 때문에 시간 변동이 불가피하다고 들었어. 어느 시간대가 좋을 것 같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S4부터 S6까지(우리로 치면 고1에서 고3)는 전부 추가 수업이 있어요. 토요일 오후에 하는 게 가장 나을 것 같아요."

"그럼 토요일 오후에 혹시 안 되는 학생이 있니?"


세 명의 학생이 손을 들었습니다. 이들의 이유를 어렴풋하지만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죠. 모두 하얀 히잡을 쓰고 있었거든요.


"토요일에 레슨이 있어요."

"무슨 레슨이니? 내가 선생님한테 말씀드려볼까?"


학생들이 까르르 웃었습니다. 


"학교 수업이 아니라, 종교적인 거예요. 저희 선생님이 되게 엄하시거든요. 부모님이 허락하실지도 모르겠어요."

"그럼 일단 내가 부모님과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는 레터를 써볼게. 내가 너희 종교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으니, 내일까지 레터가 필요한 학생들은 내가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지 세부사항을 적어서 줘. 그럼 내 서명이 담긴 레터를 써서 너희들에게 줄게."

무릎을 꿇고 요가 호흡을 가르치기까지 학생들과 치열한 조율 과정을 거쳐야만 했습니다. 



진지한 태도로 꾸준히 임할 학생들만 나름 선발해서 그런지, 학생들의 열의가 매우 높았습니다. 요가 매트 없이 풀밭에서 하는 요가인지라 사바사나 휴식이나 완전히 누워서 하는 동작은 할 수 없지만, 호흡법 이후 캣·카우 동작을 시작했습니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학생들은 제 캣동작 시범에 까르르 웃었습니다. 

캣동작. 위치상 제 엉덩이 쪽을 봐야 했던 학생들이 유독 웃더군요.

학생들은 하이플랭크 동작부터 힘들어했습니다. 어깨와 손바닥이 수직이 되게 하라는 말을 듣기엔 마음이 다소 급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학생들의 손과 발은 가면 갈수록 멀어졌는데, 학생들이 너무 귀여워 웃음을 참기 힘들었습니다. 

사실 요가와 얼차려는 한 끗 차이입니다. 체벌이 아니라 하이플랭크라는 점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2019.03.06)

하이플랭크에서 다운독으로 연결되는 동작을 시켜봤습니다. 팔과 등을 일자로 만들어야 하는 만큼, 어려워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PMM 요가 전사들은 자신의 관절 마디를 있는 힘껏 뻗기 위해 애썼고, 실제로도 잘했습니다. 업독 역시 무리 없이 소화했고, 빈야사 연결동작까지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제가 요가를 가르쳐 본 경험은 전무한 터라 약간의 걱정이 있었는데, 제법 유명 요가 강사처럼 목소리도 조곤조곤하게,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해냈다고 생각합니다(요가의 포인트는 강사의 나긋한 목소리라고 생각하는 1인).


원래 계획했던 오늘의 마지막 진도인 전사 자세 1번에 들어가자 학생들이 동요하기 시작하더군요. 첫 번째로, 치마를 입은 학생들이 있었고(공지사항에 반드시 sports attire를 입으라고 그렇게 강조했지만 절반은 치마), 유독 이곳 학생은 다리를 벌리는 자세가 나오면 일단 소리부터 지르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내 학생들은 요가의 평정심을 되찾았고, 저는 허벅지가 타들어가는 느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적극 배려해줬습니다. 전사 자세 1번은, 선 자세 - 전사 자세 - 하이플랭크 - 워크아웃 - 선 자세 - 합장 순으로 보여줬는데, 워크아웃까지는 유독 힘들어하다가, 선 자세 - 합장에서는 프로처럼 평정심을 찾는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아마 보는 사람만 알 수 있을 겁니다.  

PMM 요가 전사들의 전사 자세 1번
이때만큼은 너 나할 것 없이 최소 룰루레몬 메인 모델.

마지막으로 학생들의 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한 마디를 던졌습니다. "이번 학기 요가 세션이 끝날 때, 까마귀 자세로 10초 이상 버틸 수 있는 학생들에 한해서 상을 줄게."

까마귀 자세를 취하지도 않았지만 학생들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습니다. 몇몇 학생은 까마귀 자세를 취하려고 시도하다가 땅에 머리를 콩 박기도 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는데 정작 그 학생은 헤헤 웃더라고요. 

까마귀 자세. 생각보다 그렇게 가혹할 만큼 어려운 동작은 아닙니다.

개구리 - 까마귀 자세를 끝으로 첫 요가 클래스를 마무리했습니다. 가방을 주섬주섬 싸면서도 학생들은 집에서 까마귀 자세를 연습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공유하더군요. Dismiss를 외쳐도 학생들은 제 주위를 떠나지 않고 한국어를 한참 동안 물어봤습니다. '오빠', '사랑해', '어마마마' 등 누가 봐도 한국 드라마로 한국어를 배운 이들이나 물어볼 법한 것들을 말이죠. 


추가로 손가락 하트까지 가르쳐주면서 첫 요가 클래스를 정말 끝냈습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연예인들이 손가락 하트 포즈를 취할 때마다 오글거림을 참을 수 없었는데 정작 이곳에 오니 손가락 하트만큼 귀엽고 의미도 좋으면서 호응이 보장된 동작을 찾기도 힘들더라고요. 그러니 마지막 손가락 하트 사진은 너무 식상해하지 말아 주시길! 

이들에겐 손가락 하트 시켰지만 저는 알로하 손으로 마지막 자존심을 지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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