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널드 Feb 28. 2019

요가 클럽으로 맨땅에 헤딩

우간다 학교에서 스포츠클럽 개설해보기

체육 수업의 기회는 제한적이고, 체육 용품도 없는 막막한 상황에서 제가 당장 실행할 수 있는 액션플랜이 뭘까 고민하다가 방과 후에 진행하는 요가 클럽을 개설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요가 매트 없이 잔디밭에서 진행해야 하지만, 코이카 예산을 승인받아 물품을 살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생각이 더 강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장에게 건의하러 가니 "나도 요가 클럽에서 운동하고 싶다"며 자신의 뜻을 밝혀 괜히 마음이 든든했던 것도 있습니다.

농기구 아니고 체육용품입니다.

 어떻게 학생들을 모집할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많은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지만 가능한 시간은 일주일에 방과 후 한 시간이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오픈 클래스로 진행해 최대한 참여 기회를 많이 주고 싶었지만, 학생 수가 많아져 관리가 어려울 것이 불 보듯 뻔했습니다. 끝내 저는 30명 정도를 선발하는 것을 목표로 대대적인 PMM YOGA CLUB 리크루팅에 나섰습니다.

대략적인 리크루팅 과정은 이렇습니다. 지원서를 작성해 등록하면 그중 인터뷰 대상자를 추리고, 최종 인터뷰를 통해 30명 내외의 인원을 꾸리는 것입니다. 방과 후 스포츠클럽 하는데 다소 야박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선발된 학생들이 요가 클럽에 애정을 갖고 진지하게 임하길 기대하는 마음에 이런 번잡스러운 과정을 굳이 만들었습니다.

지지난 주말에 요가 클럽 홍보 포스터를 만들고 지원서를 내 손으로 직접 오려가며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면접 장소 역시 고민이었지만 다행히도(?) 코워커가 생물 수업과 체육 수업을 같이 진행하는 덕에(사실상 생물 선생님인데 체육도 도맡아 하는), 무엇보다 제가 하는 일을 발 벗고 도와주는 사람인 덕에, 생물 실험실을 면접 장소로 쓸 수 있게 됐습니다. 지원서를 출력해 일일이 150장을 오려가며 제 형편없는 가위질과 투쟁했습니다. 막상 이렇게 준비했는데 지원자가 적을까 내심 걱정이 들기도 했습니다.

미국 고등학교 동아리 홍보포스터 느낌. 게시판에 정성들여 붙였습니다.

.

수작업을 거친 지원서와 접수 박스. tmi. 접수 박스는 칼이 없어 주방용 칼로 잘랐습니다

월요일에, 저는 출력한 포스터를 학생 게시판에 붙이고, 지원서와 접수 박스를 생물 실험실에 놓았습니다. 제가 포스터를 들고 왔다 갔다 하니 다른 선생님들도 관심을 보였습니다. 자꾸 자기들도 클럽에 참여해도 되냐고 물어 조금은 부담스러웠지만, 저는 "My pleasure"라고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사실 고마움이 훨씬 크니까요. 생물 교사이자 체육 교사이며 제 코워커이기도 한 다니엘 씨는 생물 실험실 협찬도 모자라 자기도 학생들에게 홍보하겠다며 저를 또 한 번 감동시켰습니다.

다음날 화요일은 근무일이 아니었지만 저는 지원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학교로 향했습니다. 다니엘 씨는 보자마자 지원서가 동났다며 빨리 더 만들기를 재촉했습니다. 또 지원서 때문에 가위와 한바탕 할 걸 생각하니 갑갑했지만 학생들의 호응에 한시름 놓을 수 있었습니다. 추가로 120장을 오려 지원서를 만들었습니다. 계속 학교에 용지를 부탁하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아 공지사항에 "Hand-written forms are also acceptable"이라는 문구도 잊지 않고 넣었습니다.

지원서 쓰는 학생들.
절대 제가 더 인쇄하기 귀찮았던 건 아닙니다.

접수마감일인 금요일에 지원서를 다 챙겨 소위 말하는 '서류 걸러내기 작업'을 했습니다. 막상 서류를 탈탈 털어 보니 130장의 지원서가 들어 있었습니다(나머지 140장은 어디로?). 장난식으로 적어 낸 서류를 제외하고 틀에 박힌 대답이나 성의 없는 답변을 빼니 58명 정도로 추릴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진 순조로웠는데 갑작스러운 변수가 등장했습니다. 30시간 정전으로 제 노트북 충전기가 먹통이 돼버린 겁니다. 학생 이름과 학년 면접 일정을 공지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 당황스러웠지만 시내에 있는 인터넷 카페로 향했습니다. 학생들이 쓴 지원서를 알아보느라 애를 먹었지만 옆사람에게 무슨 스펠링인지 물어봐 가며 면접 대상자를 확정지었습니다.  

오른쪽이 면접대상자. 분류작업 완료.
갑자기 분위기 사랑해. 이름만 썼어도 면접 대상자였을텐데 아쉽다.


그렇게 공지한 바대로 오늘 면접을 진행했습니다. 사실 오늘의 가장 큰 걱정은 면접 시간 안배였습니다.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뒷 조 학생들이 오래 기다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58명을 어찌 됐든 한 시간 반 안에 모두 마치겠다는 각오로 생물 실험실에서 학생들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하지만 이내 그건 제 착각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면접 시간이 지났는데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으니까요. 인터뷰어인 제가 정작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실험실에 온 학생들은 자신이 왜 면접 대상자에 없는지 컴플레인하러 온 이들이 전부였습니다. 저는 Serious attitude를 근거로 판단했다고 답변해줬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몇몇 학생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두 명씩 들어와 면접을 진행했고, 얼마나 진지한지, 얼마나 열의가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면접에 참석한 면접 대상자 학생들이 인터뷰가 끝나도 몇몇 컴플레인을 걸었던 학생들이 자리를 지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면접을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 이유는 면접 대상자 58명 중 16명만 면접에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한 시간이 넘도록 참고 기다린 비대상자 학생 3명도 면접을 진행했습니다. 누구보다 진지하게 요가 클럽에 임하고 싶다며 포부를 밝히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앙증맞았던 면접 장소. 의외로 떠는 학생들이 많아서 귀여웠다.


그래서, 면접에 참여한 19명 학생(+교직원 몇 명)으로 PMM 요가 클럽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면접 결과는 다음 주 월요일에 공지되고 첫 클래스는 수요일에 열립니다. 학생들보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이 결과를 먼저 아는 셈이 됐네요. 맨땅에 헤딩으로 시작하는 요가 클럽이 어떻게 꾸려져 나갈지 저도 감이 안 오네요. 이 자그마한 일이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줄지 저 역시 궁금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가 일하는 우간다 학교를 소개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